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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Dec 21. 2023

12월 몇몇 일기

일기를 공개하는 심리는 뭘까?

12월 11일 월요일

모든 날은 둘로 나눌수 있다.

이미 마신 날과 이제 마실 날.

마실 이유는 차고 넘친다.

비가 와서 비가 안 와서 날이 맑아서 날이 흐려서 바람이 불어서 바람이 그쳐서 더워서 추워서 달이 밝아서 구름이 가득해서. 그 모든 날에 마시고 싶어진다.

오늘은 그저

월요일이라서 마신다.

술 사러간 남편아 빨리와라. 내 안주 다 식는다.


12월  20일 수요일

슬프다 이제 시를 읽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구나.

사두고 펼쳐보지도 않던 시집을 꺼냈다.

즐겨 읽지 않아도, 가끔 읽어도 시를 읽으면 좋았다. 몸은 비대하고 무거지만 시를 읽을때면 아직 세상의 좋은 것을 찾아 여행을 떠날 수있는 사람인것 같아서 읽지도 않는 시집을 사곤했다.


이 시집도 그래서 샀던가.


문학동네에서 다음에 나올 시인들의 시를 맛보기로 엮어 티저시집이라는 이름으로 시선집을 만들었다. 보수적인 문학출판사에서 꽤 참신한 기획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만한 이름값을 하는 거대출판사기에 가능한 기획이겠지만.

엊그제 집어 하나씩 읽는데 어렵고, 이해가 안간다. 모르는 이름들, 낯선 언어들, 어려운 장면들이 이어졌다. 마음에 와닿는 시가 없다고 말하는건  내가 너무 교만한것 같다.  아마 잘 모르겠다는게 더 정확하겠지.

그래도 뻑뻑하고 맛없는 호밀빵을 뜯어먹듯이 한 편 한 편 시를 꼭꼭 씹어 삼켜본다. 거칠고 맛을 모를 때도 많지만 첨가물 없는 빵의 담백함으로 내 뱃살의 기름을 덜어내는 것 처럼, 영혼의 엉킨 부유물들을 건져낸다. 시를 읽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


문학동네시인선200  티저시집을 읽다가


12월  21일  목요일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열었다. 영하14도. 다시한 번 확인했다. 진짜 영하 14도였다. 추워도 추워도 너무 추운 아침이다.

얇은 옷을 여러 벌 겹쳐 입는 것이 보온에 좋다고 해서 두꺼운 니트 대신 얇은 폴라와 가디건을 겹쳐 입었는데 아닌 것 같다. 초등생 열명 세워놔봐라 흥민이 하나 이기나. 두껍고 따뜻한 옷을 입을 걸 후회했다. 이미 늦었지만.

매일 신고 다니는 가짜 가죽 스티커즈는 차가워져서 발이 시렵길래 오늘은 운동화를 신고 나섰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알았다. 천 사이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든다. 몇 발짝 걷지도 않았는데 발이 시려왔다.

모자도 장갑도 핫팩도 없다. 믿을 구석은 마스크 한 장이다. 열 두 척의 배로 전투에 나선 이순신 장군의 심정이 이럴까.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아 버스가 왔다. 버스에 오르는데 손잡이가 차가워 깜짝 놀랐다. 종점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버스라 공기도 좌석도 차갑기만 하다. 얼른 교실에 가서 난방기를 켜고 전기포트 물을 끓여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

세상에, 얼른 출근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다니. 정말 대단한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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