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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an 06. 2024

밥 잘 챙겨먹고 그래야 힘이 나

어제 작은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나름 해방감을 느끼며 오늘 하루는 놀겠다고 선언했고 덩달아 고딩 큰아들도 휴가얻은 직장인 마냥 둘이 붙어서 새벽까지 게임하고 놀았다. 아마 3, 4시가 넘어서 잠든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먼저 잠들었고, 평소와 같이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나 혼자 밥먹고, 나 혼자 게임하고, 나 혼자 책읽고, 나 혼자 브런치 글도 썼다. 분명 주말이고 온 식구가 집에 있는데, 완벽하게 혼자다. 나 혼자 '나 혼자 산다'를 찍고 있는 기분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전에서 오후로 기준이 바뀌었다. 그제야 사람의 기척이 느껴진다.


오후 1시 - 남편이 일어났다.

오후 3시 - 큰아들이 일어났다.

오후 4시 - 작은아들이 일어났다.


 이 게으른 족속들아. 일어나면 뭐하나 그대로 핸드폰을 하며 침대에서 뒹굴거리는걸. 좋다. 어제 늦게 잤으니 오늘까지만 봐주겠다. 난 도량이 넓은 엄마, 그릇이 큰 엄마, 아량을 베풀 줄 아는 엄마니까. 그런데 큰 아들이 배고프다고 밥 달라고 징징댄다.

"엄마, 나는 딱 비빔밥이 먹고싶어. 비빔밥이야 비빔밥 해줘."

음. 사람이 사람의 말을 안하고 짐승의 말을 할 때도 있구나. 이 무슨 멍멍소리란 말인가. 이 시간에 일어나서 팬티바람으로 밥 달라고 조르다니.

"안돼, 밥 때가 지나면 엄마 밥 못해. 배고프면 밥 시간에 일어나. 저녁대까지 기다려."

단호히 말하고 책상 앞에서 책을 읽었다. 평소라면 침대에 누워 읽을텐데, 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책상앞에서 독서하는 퍼포먼스를 좀 벌였다.


엄마가 아무것도 챙겨줄 기색이 보이지 않자 삼부자가 나란히 식탁에 앉아 시리얼을 먹는다. 좌르르륵 냉면그릇에 시리얼을 들이붓는 소리가 우렁차다. 저게 사료지 간식이냐. 아니나 다를까, 말리는 아빠 말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먹어, 그래야 이따 저녁먹지.", "괜찮아요 아빠, 저녁을 늦게 먹으면 되잖아요."


아, 이 사람들은 70년대 태어나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의 새마을 운동을 경험했어야 한다. 하다못해 중동 사막에 건설공사하러 보냈어야 한다. 이 한심한 XY들아.......

".....좀만 먹어. 저녁 일찍 해줄게. 오늘까지만 봐주는거다."

그리고 다시 방에 들어왔더니 남편은 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며 분주히 움직인다. 설겆이도 끝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먹은 그릇만 치우고는 또다시 침대행이다. 참자, 참을 인자 셋이면 사람도 살린다고............지금까지 내가 구한 생명이 도대체 몇 명이란 말이냐! 울컥하는 마음을 또다지 토닥이는데 택배배송완료 문자가 온다. 순식간에 영혼의 평화가 찾아왔다. 고도로 발달된 택배는 전쟁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택배는 사은품이 주인공이다. 책은 나중에 확인해도 된다. 포장을 뜯고 사은품을 확인했다. 신이어마켓의 레트로 쟁반이다. 도라지꽃같이 삐뚜름한 색색의 꽃들이 가운데 자리잡고 할머님의 투박한 글씨체로 문구가 적혀있다. '밥 잘 챙겨먹고 그래야 힘이 나' 이런, 보자마자 기분이 좋아져서 여러 컷 인증샷을 찍었다. 컴퓨터 옆에 두고 있자니 좀 웃길것 같아 일단은 부엌 도마뒤에 꽂아두려고 들고 가는데, 밥을 잘 챙겨먹으라는 문구가 눈에 밟힌다. 그렇지, 밥은 먹어야지.  아침이고 점심이고 먹지 못해 강제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는 삼부자가 생각났다.

사실 남편이나 아들이나 자기들이 배고프면 알아서 먹는 사람들인데, 오늘따라 내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어리광이 귀찮기도 하지만 사랑스러울 때도 있다. 그래 오늘 저녁에는 좀 맛난거를 먹어볼까. 얼른 쌀 씻어 밥 앉히고 고기도 좀 구워야겠다. 얼굴 마주보고 다같이 따스한 저녁밥을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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