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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Dec 13. 2023

숲을 지켜야 하는 까닭이 뭘까요?

아이가 답을 공개합니다.

2학년 2학기 국어 9단원에서는 설명하는 글을 읽고 글의 주요 내용을 알아보기가 나온다. 아직 논설문이나 설명문을 배우기 전 단계에서 간단한 글을 읽고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해 보는 단원이다. 아홉 살 어린이들에게 쉽지 않은 내용이다. 


동화나 광고를 보고 글쓴이가 어떤 말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찾아보고, 거기에 대한 내 생각까지 적어보는 일은 성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여러 이야기로 반복해가며 주요 내용을 찾아보고, 거기에 대한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쓰는 일은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는 교사에게도 대단한 도전이다. 


단원이 끝나고 성취기준 도달 확인을 위한 수행평가가 있었다. 마지막 5번은 짧은 글을 읽고 자신만의 생각을 적는 문제였다. 숲을 잘 가꾸자는 내용을 담은 6문장의 글을 주어주고, 그 까닭에 대해 자기 생각을 적어야한다. 


숲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숲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줍니다....그래서 숲이 사라지지 않도록 아끼고 가꾸어야한다...


많은 아이들은 숲의 효용에 대해 썼다. 제시된 글 속의 이유를 그대로 찾아 적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것만 해도 잘 하는거다. 글의 핵심을 파악하고 찾아 적는 것도 충분히 잘 하는거다.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적은 아이들이 소수 있었다. 자신만의 견해를 담아 문장으로 표현했다. 평가를 떠나 멋진 아이들이다. 물론 엉뚱한 이야기를 쓰거나 전혀 문제와 상관없는 글을 쓴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채점하다 읽자마자 눈이 환해지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글이 있었다.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고, 아름다움 마저 느껴지는 답이었다.


숲을 잘 가꾸자. 숲을 잘 가꾸면 봄에는 예쁜 벚꽃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초록색 잎이 피어나. 가을에는 단풍잎과 은행잎이 피어나고 겨울에는 겨울눈이 자라니까 숲을 잘 가꾸자.

인간에게 유용하니까, 경제적인 이득을 주니까, 우리의 필요와 쓸모를 채워줘서가 아니라 숲 그자체로 아름다운 생명을 만들어내므로 숲을 잘 가꾸자는 아이의 글. 인간에게 아름다운 환경을 제공해주는 이익이 아니라 계절마다 자라는 숲 그 자체가 소중해서 가꾸자는 아이 마음이 느껴졌다. 평소에 글을 많이 쓰거나 글로 표현하는 아이가 아니어서 더 감동이 컸다.


아이들의 엉뚱한 답지 덕분에 웃은 적은 많았는데, 감동으로 눈물 날 뻔한 적은 간만이었다. 순수한 아이의 마음이 적은 답지에 나는 당연히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주었고, 어떻게해서든 아이를 칭찬하고 싶어 기회를 찾는 중이다. 


채점하던 순간의 감동이 어제부터 마음 한 켠에 살아있다. 이 글과 글을 쓴 아이 마음을 떠올리면 지치고 우울한 내 마음, 찌들은 내 마음에도 숲의 싱그런 바람이 한 줄 불어오는 것 같다. 그렇게 눈과 마음에 아이의 글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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