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상담기간이었고 여느 학부모님처럼 A어머니도 신청하셨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A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A의 학교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에 어머니가 "그런데요, 선생님."하며 말을 꺼내셨다. 이어지는 말은 "우리 애가 선생님한테 지적을 많이 받나요?"였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실까요?" 의아하게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은 이했다. 땀 흘리는 아이 사진을 밴드에서 봤다시며, 다른 엄마들도 보는 곳에 아이가 잘 나오지 않은 사진을 올린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셨다. 학급 전체 사진을 올릴 때 늘 염두에 두는 부분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리 공지를 하고 운영하는 학급밴드지만 엄마 마음에 예쁜 사진이 아니라 아쉬울 수 있다. 엄마가 보기에 잘 나오지 않은 사진이 서운할 수는 있다고,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내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이가 평소에 담임에게 지적을 많이 받아서 그런 사진을 올린 것이 아니냐고 묻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고 아이의 학교생활이 걱정되어서 상담신청을 했다는 거다.
피가 차갑게 식는 듯한 느낌이었다. 순식간에 입꼬리가 내려가고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어머니 마음도 공감이 되며 그런 오해를 하실 수 있다. 이러저러하여 사진을 올렸고, 걱정하시는 일은 전혀 없다. 아이는 매우 모범적으로 잘 지내고 있으니 염려 놓으시라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끊고나서 한동안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했기에, 교사를 어떻게 보기에 저런 말을 내게 할 수 있었을까. 말투가 공손하다고 의미도 그런 것은 아니다. 아이가 교사에게 지적을 많이 당해서 일부러 못난 사진을 올렸다고 생각해서, 고작 내가 그 정도의 교사로 보여서 지금 내게 물어보고 있었던 것 아닌가. 평소 아이를 대하는 내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차라리 '우리 애 사진은 왜 없나요?','더 예쁘게 나온 사진을 올려주세요' 같은 민원이었으면 살짝 진상인가보다 생각하고 웃으며 넘겼을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나 하고 싶은대로 계속 했을거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나는 억울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학년이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사실 계속 후회했다. 그렇게 상담을 마무리 짖지 말걸, 따지기라도 할걸, 매우 무례하시다, 지금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하느냐고 말이라도 해볼걸, 화를 낼걸, 바보같이 그냥 아니라고 변명하고 설명하는데 급급했던 것 같아서 더 속상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가르쳐온 시간이 무시당하는 것 같고, 교사로서의 내 모습또한 부정당한 것 같아서 너무나 분했다. 제대로 되묻고 따지지 못해서 두고두고 남는 마음의 상처를 만들어버렸다.
며칠간 마음앓이하고 툭툭 털어냈다. 하지만 그 후로 밴드에 사진을 포함한 어떤 글도 올리지 않았다. 꼭 필요한 최소한의 알림은 문자로 했다. 응원하고 좋아해주신 다른 학부모님들에게 미안하고, 나도 아쉬웠지만, A어머니가 자꾸 떠올라서 도저히 글이 써지지가 않았다. 일상적으로 기록하던 아이들 사진도 전혀 찍고 싶지 않았다. 그냥 흘려보내고 하던대로 계속 밴드에 글과 사진을 올렸을 수도 있지만, 안그래도 올해 정말 힘든 시국을 보낸터라 학부모들 마음 하나하나까지 배려해가며 아이들과 살아낼 여유가 없었다. 결국 밴드는 지금까지 방치상태다.
아마 A 어머니는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무례한지, 자신이 한 말이 내게 얼마나 모욕적인지 몰랐을거다. 그럴 수 있다. 세상일이라는게 내가 주는대로 받는 것이 아니고 받은대로 주는 것도 아니니까, 누구라도 나를 오해할 수 있으니까. 그때마다 반응하며 살아가기엔 세상은 바쁘고 피곤하다. 넘길 건 넘기고, 털어낼 건 털어내야한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다. "함께 해서 즐거웠고, 다신 보지 말자." 2023년도 이제 끝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