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손꼽히는 지성인이자 독서가인 세 남자가 23년에 환갑을 맞았다. 민망한 환갑잔치 대신에 한 해 동안 전국을 돌며 토크콘서트를 나누고 그 대담을 책으로 엮었다. 이 멋진 기획의 주인공은 이권우, 이명현, 이정모다. 각각 유명한 도서평론가이자 작가, 천문학자이자 과학책방 대표, 국내 유명 박물관(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서울시립박물관장,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을 지낸 사람들이다.
이름만으로도 어마무시한 이 세 남자에게 물리학자 김상욱, 진화학자 장대익, 뇌과학자 정재승이 질문을 던졌고 그 내용을 강양구 기자가 정리해 3권의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놨다. 어크로스 출판사에서 만든 ‘살아보니’ 시리즈다. 그 중 독서와 글쓰기, 인공지능과 명상, 우정과 노년의 뇌에 관한 이야기를 묶은 편이 [살아보니, 지능]이다. [살아보니, 진화], [살아보니, 시간]에 앞서 제일 먼저 이 책 [살아보니, 지능]을 고른 이유는 광고 카피에 홀라당 넘어가서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의 뇌는 어떻게 변화할까?’라니 너무너무 궁금해서 바로 주문하고 받자마자 이틀에 걸쳐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을까? 애석하게도 기대만큼의 책이 아니었다. 다섯 남자의 대담을 엮은 책이라 구어체에다 행간도 널찍해서 읽기 매우 수월했지만, 딱 그 정도로 가벼웠다. 솔직하게 말해 기대한 게 어이없게 느껴질 정도로 저자들의 이름값에 비해 얕은 이야기들이었다. 알쓸신잡이나 유튜브 채널을 보는 기분이었다. 적당히 진지한 수다랄까. 오히려 질문을 던지는 정재승의 이야기에서 훨씬 더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50을 시작하는 정재승의 고민이 더 치열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책을 펴게 했던 궁금증은 해소되지 못했지만 워낙 다양한 이야기들이 종횡무진 펼쳐져서 읽는 재미는 있었다. 다가올 시대를 대비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새해부터 고민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앞 세대에 대한 이해도 넓힐 수 있었고 세대를 초월한 품격있고 유쾌한 우정의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다.(솔직히 너무 부럽고 대단하다!) 다만 넓게 펼치기 보다 더 깊게 파고들어 얘기해주었다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개인적으로 이야기 중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지점과 챗GPT 관련한 얘기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고등학생 아들에게는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려 하지만 굳이 주변에 추천하지는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