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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an 17. 2024

파워 P의 해피해피 무한긍정 여행이란?

강릉 다녀온 계획표 공유합니다

- MBTI를 안 믿는다는 글을 발행한 주제에 제목에 파워 P라고 대놓고 쓴 이유는? 그렇습니다....클릭클릭유도대작전인 것입니다........후후후후후 들어와라 들어와라... 사막에 사는 개미귀신이 모래를 파놓고 기다리는 심정이 이런걸까요?  -_- 


고2 올라가는 큰 애, 중학교 입학하는 작은 애까지 네 식구가 조촐하게 강릉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해외여행도 아닌데 계획이 뭐 필요있을까요? 하지만 저는 즐거운 여행을 위해 아주 철저하게 계획을 짰습니다. 이렇게요. 숙소예약은 물론이고, 관람할 곳 운영시간도 미리 확인해두고, 주차할 곳도 찾아뒀습니다. 거기에 동선을 고려해 밥 먹을 곳도 정했지요. 둘러볼 곳과 해야할 일을 다 정해놓으니 어찌나 든든하고 뿌듯하던지요. 이래서 사람들이 계획을 짜는구나 싶었습니다.이쯤에서 계획표도 한 번 공개하겠습니다. 


계획표대로 잘 진행되었냐고요? 일단 출발이 10시였습니다. 아이들이 늦게 일어났거든요. 좀 늦게 가면 어떤가요, 어차피 늦게 잘텐데. 그러려니 합니다. 길이 막히지 않아 편하게 도착했습니다. 주차 문제로 조금 헤맸지요. 그래도 무료인 곳에 잘 세워두고 중앙시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걸어가는데 세상에, 탕후루가 1+1! 아이들은 이미 한 손에 하나씩 쥐고 있고요, 각자 용돈을 들고 시장안을 돌아다니며 이거저거 먹었습니다. 


이제 좀 커피 생각이 날 때 쯤,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프라(건담 프라모델)과 온갖 피규어가 있는 카페로 갔습니다. 세상에 강릉까지 와서 오죽헌이나 경포호 같은 지역의 사적과 유명관광지를 내버려두고 애니메이션 피규어와 건담이 장식되어 있는 카페라니요. 어떤가요, 아이들이 좋아하면 되었죠. 거기서 온갖 프라모델 구경하고 사고싶은 모델이 있으면 사주겠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아들들 취향의 제품은 없었습니다. 다행이 제 지갑은 자리를 보전했군요. 앉아서 각자 핸드폰 들여다보며 음료를 마시고 다리를 쉬게 했습니다. 잘 쉬다가 다시 또 시장에서 먹거리를 사들고 휴양림에 들어가서 저녁 배불리 먹고 뜨끈한 온돌바닥에서 핸드폰과 한 몸되기 시작.



다음 날은 강릉 여행의 목적, 정동진 심곡바다부채길 걷기였습니다. 작은 산 정도 되는 끝도 없는 계단을 걸어내려가면 거친 파도와 바다바위들이 주욱 늘어선 해안가를 걸을 수 있어요. 정동진의 랜드마크 썬크루즈 주차장에서 출발해서 밑에 있는 심곡항까지 인데요, 어머! 오늘부터, 바로 지금부터 중간지점까지만 운영을 한다는겁니다. 시설보수공사를 시작한다고 막아뒀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왔을텐데......(이 대사가 과연 또 나올까요?) 아쉽지만 중간까지 만이라도 걸어봅니다. 남편도 무척 아쉬워했어요. 왜냐하면 끝까지 가야 거기서 택시를 타고 출발지로 돌아올 수 있거든요. 중간에서 되돌아가려면 아까 힘들게 내려온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야 합니다. 중간에 돌아오면서부터 남편은 올라갈 걱정을 하더군요. 남편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여보, 아직 계단까지 안 갔어. 나중에 올라갈 걱정 하지 말고 지금은 여기 바다 풍경을 그냥 즐기면 안될까? 걱정은 이따 계단 밑에서부터 하자. 그때부터 해도 되잖아, 뭐 벌써 올라갈 걱정이야. 일단 바다를 봐봐."

남편 입꼬리가 슬쩍 올라갑니다. 닥치면 그때 걱정하자고요, 걱정한다고 계단이 낮아집니까. 저렇게 바다가 예쁜데 걱정하느라 못 보면 아깝잖아요. 


아름답고 푸른 바다, 섬 하나 배 하나 구름 하나 보이지 않는 코발트 블루가 어찌나 선명하던지요. 적당히 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햇살을 만끽하며 걸어왔습니다. 중간에 죽은 갈매기를 뜯어먹는 까마귀도 보고요, 계단을 오르다 산에서 방목하는 흑명소도 한 마리 보고요, 고양이들도 만나서 더 즐거웠습니다. 물론 아들과 팔짱끼고 나누는 시시껄렁한 잡담도 즐거웠지요. 아들의 요청으로 계단 위에서 남편과 뽀뽀도 해봤네요. 그렇게 놀고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어제 부채길 걸으면서 아들이 레일바이크를 타고싶어했거든요. '그럼 타보자!' 예정에 없었지만 갑니다, 레일바이크. 겨울바닷길을 시원하게 달려보죠! 주차장에 내려 매표소까지 뛰어가는 아들을 쫒아갔습니다. 당당히 카드를 꺼내 결재하려는데, 어라, 창구가 막혀있습니다. 아이고, 붉은 글씨로 '오늘부터 시설보수공사'라고 붙여놨네요. 또 오늘부터, 하필 오늘부터.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탈걸.........아들의 좌절과 낙담, 원망 3종세트를 뒤로 하고 역을 지나 바닷가로 내려갔습니다. 모래사장과 파도를 보니 아들도 절로 풀리더군요. "못 탔으면 어떠냐, 다음에 너 여자친구랑 와서 둘이 타라, 그게 더 재밌다." 아들 어깨를 두들기고 발로 모래를 파며 놀았습니다. 성채를 쌓고 파도가 못 넘게 디펜스 게임을 하다가 신발이 젖기도 하고요. 아무것도 없는 바다에서 파도만 구경하는데도 한 시간이 지났더군요. 계획이 어그러지면 어그러지는대로 또 다른 만족을 찾는 재미가 있어요. 넘어진 김에 돌이라도 줍고 일어나는 식이죠.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바닷가에서 잘 놀고 이번에는 엄마의 취향, 지역의 동네책방을 찾았습니다. 고성에 갔을 때는 '숨은책방' 통영에 갔을 때는 '봄날의 책방'을 갔던 것처럼요. 강릉 독립책방들은 화요일이 휴무인 곳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베이커리와 북카페, 세미나룸까지 있는 대형서점이지만 독립출판물도 다루는 고래책방에 갔습니다. 읽고 싶었던 신간과 아이 책을 고르고 시그니쳐 음료도 마시면서 잠시 쉬어야죠. 곳곳에 강릉을 느낄 있는 굿즈와 큐레이션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서 엄마가 정신 팔린 사이 아이들은 핸드폰 자유시간을 얻었네요. 핸드폰사용에 잔소리를 안하니 아이들에겐 확실히 힐링여행이었을 겁니다. 책도 좀 읽고, 음료도 마시고 핸드폰도 하는 조용한 공간에 우리 네식구만 있다는 게 꽤나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이들이 커갈 수록 이렇게 같이 있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집에 있어도 각자 자기 있는 곳에서 자기 할 일만 하고 있으니까요. 여행가는 내내 좁은 차 안에서, 방 하나에서, 식당에서 내내 붙어있는 다는 게 참 좋았습니다. 이러려고 잠시 떠나는 거겠지요.


집에 돌아와 매일 보던 익숙한 풍경을 보니 새삼 또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습니다.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공기를 느끼는 것, 그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닫는 나들이였나봅니다. 아, 계획을 잘 짜서 떠난 여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별로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완벽하게 계획을 짜서 다녀올까합니다. 이 이상 어떻게 치밀하게 일정을 짜야할 지 벌써부터 고민됩니다. 국내여행도 이런데, 해외여행을 갈 수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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