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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an 31. 2024

일희일비하며 살자!!

    일희일비(悲), 상황에 따라 감정이 급격하게 변하거나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기복이 심할때쓰는 말. 보통 '일희일비하지 말라'쓴다. 

    나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그야말로 일희일비하는 사람이다. 소소한 일들에도 다 반응하고 마음을 드러내며 감정을 표현한다. 어렸을 때 많이 듣던 말이 '울다가 웃으면 똥꾸멍에 털난다'와 '앙은 냄비처럼 끓었다 식었다한다'였다. 어쨌든 아침방송 방청객처럼 리액션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건 피곤하기도 했지만 대개 재미있었다.


 

   반백년을 일희일비하며 살았는데 요즘에는 반응의 강도가 좀 약해졌다. 나뭇잎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까르르까르르 웃던 소녀가 나무가 뿌리채 뽑히고 날라가야 '아이쿠'하고 반응하는 아줌마가 된 느낌이랄까. 게다가 살아보니 새옹지마처럼 안 좋은 일이 있다가도 좋은 일이 있고, 좋은 일이 있다가도 안 좋은 일이 터지는게 인생인데, 매번 반응하는 것보다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더 유리할 때도 많았다. 롤러코스터는 어쩌다 한 번 타야 재밌는 건데, 아찔한 상승과 하강이 하루 종일 몇 번씩 반복되면 피곤해질 수 밖에 없다. 이제는  좋은 일이 있으면 그 속에서 굳이 나쁜 일을 꺼내고, 나쁜 일 가운데서도 조금이나마 좋은 부분을 찾아내면서 덜 흔들리려고 애쓴다. 탄력이 떨어진 내 정신이 수시로 바뀌는 온도차를 감당해낼 수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여전히 일희일비하며 산다. 노쇠해가는 내 몸과 마음이 견뎌내기 힘들어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고 싶지만 어쩔 수가 없다. (직업병이다.)아이들과 함께 하는 매 시간이 특별한 사건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급식을 먹다 이가 빠졌다!  (신체성장 수치가 +1 올라갔다!)

못하던 받아올림이 있는 두 자리 덧셈을 성공했다!  (성취감이 +1 상승했다!)

이어달리기 대 역전극을 펼쳤다!  (자존감과 공동체의식 레벨이 올랐다!)

친구가 놀려서 어깨를 때렸다! 복도에서 뛰다가 친구와 부딪혔다! 내가 만든 그림을 친구가 망쳤다!(대혼돈이 펼쳐졌다!!!)


    매일매일 펼쳐지는 냉탕과 온탕,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일희일비 하다가는 제 명에 못 살 것 같은데, 나와 달리 태어난지 십년 남짓한 아이들에게는 한 시간 한 시간이 대하소설이고 십 분 이십 분이 주말드라마다. 온 세상이 아이들에게는 대단한 일들로 꽉 차있다. 내게는 별 거 아닌 일들이 아이들에게는 우주의 별이 하나 생기는 일만큼이나 경이롭고 신기한거다. 그러니 남은 텐션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 일희일비해준다. 이렇게.


- 그랬구나, 어머나 이가 쏘옥 빠졌네. 이제 튼튼하고 멋진 새 이가 나올거야. 진짜 형님처럼.

- 세상에 이렇게 잘 할 수 있구나. 역시 열심히 연습한 보람이 있었지? 자랑스럽다.

- 넘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달린 친구도 멋지고 응원한 친구들도 너무 멋지다!

- 친구가 놀려서 속상했구나,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어깨를 쳤고. 그랬구나, 그런데 어깨를 맞은 친구 마음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 복도에서는 뛰면 안되는 데, 규칙과 질서를 잊어버렸나?

- 아이고 속상했지? 선생님도 마음 아프네. 어떻게할까?


    27명의 아이들에게 매번 비슷한 텐션으로 하루종일 대하기는 어렵다. '어쩌라고?'싶은 순간들이 차고 넘치지만 그래도 속으로 재빨리 도레미파솔, 노래를 하고 '솔'톤으로 '그랬어!' 하고 맞장구를 쳐준다. 아직 어린  저학년 아이들은 교사의 적극적인 일희일비를 통해 감정과 공감을 배울 수 있다.  

   그러니 점잖은 중년의 품위는 잠시 버려두고 일희일비용의 호들갑 리액션을 장착한다. 심장이 조여드는 것처럼 괴롭고 분노하는 일들이 넘쳐나도, 슬프고 심란한 일들에 힘이 빠져도, 교실에 들어서면 심호흡을 하고 배꼽 언저리에 있는 기운을 머리 끝까지 끌어올린다. 쉼표와 말줄임표는 서랍안에 넣어두고 느낌표를 잔뜩 챙긴다. 하루 8시간 동안의 일희일비, 내가 일하는 방식이다.  


  

*** 8월에 써두었는데, 당시 마음이 불편해서 발행하지 않은 글이네요. 

사실은 일희일비보다 일로일로하던 시기라서 ;;;; 그래도 지난 생각이 나서 올려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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