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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Feb 19. 2024

남편이 백수입니다

 우리 남편은 백수다. 손이 하얗다는 게 아니라 진짜로 직업이 없다. 경제적 수입이 0원인 찐 백수. 


 이번 연말정산 서류 제출할 때 행정실 직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 남편분은 왜?" 남편 몫까지 정산서를 내는지 의아해 하는 행정실 직원에게 웃으며 말했다. "네 맞아요. 수입이 없어서 저한테 있는 거에요." 


 물론 지금까지 사는 동안 내내 백수였던건 아니다. 비정규직이지만 십여 년간 꾸준히 일하다가 친구가 만드는 회사에 같이 참여했고, 회사를 차린 지 3년 만에 코로나로 회사가 망했다. 퇴직금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껏 사업구상중이다. 


 덕분에 나는 꽤 오래 외벌이 가장 상태다. 결혼 20주년을 1년 앞둔 지금까지로 따지면 남편은 일한 기간보다 백수로 지낸 기간이 훨씬 더 길다. 압축된 이 한 문단 안에, 저 문장들 사이사이에 글로 표현하지 못한 마음들이 들어있다. 


 안정적이지 못한 남편의 직장 때문에 사실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교회에 나가서도 친척들을 만나서도 편하게 얘기하기 어려웠고,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불편했다. 친구와, 직장동료와, 선후배와 비교하면 자신이 초라해서 괴롭고 힘들었다. 나도 뮤지컬을 보고 싶었고, 피부미용을 받아보고 싶었고, 하나쯤 명품백을 들어보고 싶었고, 해외여행도 가보고 싶었고, 호캉스도 즐겨보고 싶었다. 세상에 갖고 싶은 것은 넘쳐나고 가지지 못한 것은 자꾸만 눈에 보였다. 더 가지지 못해서 힘들고, 내세우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래서 자꾸 나를 부끄러워했던 시절이었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으면 마음이 쉽게 강퍅해진다. 친구들을 만나고 올 때마다 내 마음이, 몸이, 가정이 흔들렸다. 이리저리 흔들리면 결국 가장 큰 피해는 아이들이 겪어내야한다는 걸 시간이 한참 지나 깨달았다. 어떻게든 나의 지금을 지켜야했다. 차라리 숨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고민끝에 오랜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내 안에서 비교와 질시가 일어나기 전에 플로그를 뽑아버리듯 사람을 차단해버렸다. 그렇게해서 나를 지키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연락이 끊긴 나를 수소문 하는 사람도 있었고,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장례식장에서 만나 타박도 들었다. 끊어진 관계에 아쉬움과 미련이 남았지만 그래도 평안을 선택했다. 그리고 너그럽게 남편과의 관계를 하나씩 다시 만들어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단절된 관계로 인한 상처도 잊혀지고 미안함도 옅어져 갔다. 


 아이들이 커가며 나도 함께 자랐다. 시기와 질투로 힘들어할 에너지를 나와 가족에게 집중했다. 내가 중심을 잡아야 내 가정이 흔들리지 않는다. 다행히 급여가 많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직장이라 내가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질 수 있었다. 내가 힘든 만큼, 남편도 힘들고 괴롭겠지, 이런 생각으로 최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하고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남편도 나를 배려해주고 가사의 많은 부분을 맡으며 아이들 공부를 살펴본다. 그러다보니 신혼때보다 더 깊이 서로 사랑하고 단단해졌다.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보다 내일 더 다정할 것을 안다. 


 지난 1월 말에 남편이 지독한 감기로 2주 정도 앓아누웠다. 남편 병구완에 지친 내가 세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당신은 나쁜 남편의 세 가지를 다 갖추고 있어. 첫째, 늙은 남편. 둘째 아픈 남편, 셋째 돈 못버는 남편. 어쩔꺼야!"

 남편도 나도 깔깔 웃었다. 언중유골이이지만 둘이 같이 웃고 넘긴다. 남들이 들으면 어이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냥 이렇게 산다. 


 가끔은 내가 더 악랄하게 압박했으면 남편이 얼른 재취업에 성공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소크라테스를 유명한 철학자로 만든건 그를 구박한 악처라는 이야기처럼 내가 남편을 덜 구박해서, 덜 압박을 줘서 남편의 백수생활이 길어지는 건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그저 남편을 믿고 부족하지만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베짱이처럼 오늘 하루 알콩달콩 사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  


 남편이 백수인 것은 괜찮다. 마약을 하는 것도 아니고, 술 담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박이나 빚이 있는 것도 아니다. 플러스가 아니지만 마이너스도 아니니 괜찮다. 단지 지금 내가 부끄러운 것은, 그로 인해 흔들렸던 지난 날의 나, 관계를 끊어버려야했던 나다. 결과론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함께 늙어가며 소중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지 않을까? 사람을 놓친 안타까움과 사람을 향한 미안함이 여전히 닦이지 않는 녹처럼 남아있다. 그 녹이, 조금 부끄럽다.



*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끝으로 제 부끄러움 수집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돌이켜보니 참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아왔네요. 이곳에 적지 못한 부끄러움이 훨씬 더 많지요. 이 마음을 드러내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도 해보았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정리하고나니 꼭 뜨거운 물에 잘 불린 다음 때수건으로 박박 밀어낸 기분입니다. 조금 더 투명해지고 조금 더 가벼워진 채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 제 마음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필하시고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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