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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Feb 05. 2024

꼴찌의 사정 - 진짜 전교 꼴등

  전국에 학교가 모두 몇 개나 될까? 공공데이터포털에 올라온 자료를 확인해보니 2023년 1월 31일 기준, 초중고는 12,555개다. 이 중에 고등학교가 6922, 중학교가 8947개다.  15, 869개 학교에 중고등학교 다 3개 학년이 있으니 3을 곱하면 총 47, 607. 무슨소린고하니, 전국에 전교 1등이 47,607명이 있고 동시에 전교 꼴등도 47, 607명이 있다는거다. 여기에 대학까지 합하면 얼마나 될까? 어질어질하다. 

  난데없는 전교 1등과 전교 꼴등얘기를 꺼낸 이유가 뭘까? 그렇다, 내가 저 둘 중 하나에 속한 경험이 있다.(1등이냐 꼴등이냐!!!)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공부했던 축에 속했다. 사교육없이, 공부에 대해 조언해줄 언니나 오빠도 없이, 혼자 공부해서 대학이라는데 들어갔다.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겠다거나 어떤 학과에 가서 어떤 진로를 정하겠다는 야무진 생각따위 전혀 없었다. 당시 유일한 외적동기는 엄마였다. 오로지 엄마를 위해서, 엄마가 원하니까, 엄마가 불쌍해서 대학교라는 간판을 얻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학에 갔고, 뒤늦은 사춘기가 찾아왔다. 그것도 지독하게. 


  강의나 과제는 무시하고 동아리 활동에 빠져 미친듯이 뛰어다녔다. 그러다 알 수 없는 스위치가 켜지면 완전히 가라앉아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들이 파도처럼 번갈아가며 찾아왔다. 기숙사를 나와 자취를 시작하며 더 심해졌다. 아침에 비가 오면 문을 닫아걸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누구도 만나지 않고 아무것도 안하고 며칠씩 누워있기도 했다. 싸구려 전기 밥솥 전자패널에 표시되는 보온시간이 70시간이 넘어가면 그대로 밥이 말라버리거나 간혹 남은 밥에 곰팡이가 피기도 했다. 구석에 쌓인 빨래더미에는 개미가 끓었다. 거의 매일 밤마다 혼자 울면서 음악을 들었고 며칠 밤을 새서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기도 했다.  


   몸은 커버렸는데 속은 그대로 아이인 채였다.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았고 도망치면서 그걸 낭만 혹은 반항이라고 변명하며 살았다. 부끄러운줄도 모르고서. 당연히 내 학점은 바닥을 기었다. 졸업을 할 수 있을지 동기와 교수들이 걱정하며 채근하는데도 같이 바닥을 깔아주던 남사친들과 그라운드4라고 별명짓고는 웃으며 술을 마셨다. 그렇게 삐걱거리며 4년하고도 한 학기를 더 보내고 어찌어찌 졸업을 했다. 먼저 발령 받은 동기들이 경력을 쌓는 동안 나는 시작도 못하고 뒤쳐졌다. 


  돌이켜 생각하면 조울증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신경정신과를 찾아 약을 먹고 상담을 받았다면 그때 좀 더 행복하게 지내지 않았을까? 학점이나 공부도 도움이 되었을테고 인간관계도 더 성숙하게 맺을 수 있었을텐데. 언제나 깨달음은 뒤늦게 찾아오고 후회는 그만큼 오래간다. 



  어찌저찌해서 임용을 받았고 초임교사 시절이 지나 슬슬 다른 공부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대학원은 실력이 없어 엄두도 나지 않았고, 관심있던 분야로 방송통신대학 편입을 알아보았다. 원서제출 서류 중에 졸업한 학교의 성적표가 있었다. 요즘은 다 온라인으로 발급받겠지만 그때는 직접 학교에 찾아가서 발급받아야했다.  서류를 받아 확인하는데 이상한 숫자가 보였다. 


   123/123


  이게 뭐지? 왼쪽과 오른쪽이 숫자가 똑같네?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이게 뭔가요? 


랬다. 설마 대학생도 석차가 나올까 싶겠지만 분명 존재한다. 졸업생 전체를 성적으로 줄을 쫘악 세워서 순서를 매겼다. 왼쪽과 오른쪽이 슬래쉬 표시를 사이에두고 똑같다는 건, 내가 제일 끝이라는 소리였다. 제일 끝, 맨 꼴찌, 그러니까 전교 꼴등. 



  내가 공부를 안 한 것도 사실이고, 양심이 없는 것도 아닌지라 좋은 성적을 기대한 적은 없지만, 설마 꼴등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졸업장에 그런 얘기는 없었으니까. 세상에나 전교에서 제일 성적이 낮다니, 믿어지지가 않아서 몇 번이고 숫자를 다시 확인해야했다. 물론 전국에 나 말고도 꼴등으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매년 몇 천명씩 나오기야 하겠지. 나 말고도 꼴등해본 적 있는 사람, 어딘가에 있겠지. 모든 시험에 1등이 있다면 반드시 꼴등이 있을테니까.  


 지금은 꼴등이라는 성적 자체보다, 불성실하게 보낸 대학생활이 더 부끄럽다. 나름 변명을 위해 주저리주저리 사연을 적어놓았지만 엉망이고 미숙했던 그때의 나를 변명하기엔 충분치 못하다. 더 열심히 치열하게 살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매몰되어 있던 대학생활이 아쉽기만하다. 진부하고 재미없지만, 한 번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 수 있을텐데'라고 적어보고 싶다. 


  얻은 것도 있다. 꼴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꼴찌에게도 사정이 있고, 자존심이 있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몸으로 깨달았다. 그건 교사로서 평가하며 사는 삶에 중요한 교훈이 되었다. 평어를 입력할 때나 평가지 채점할 때, 평가결과를 확인하고 공부가 무엇인지 이야기할 때, 그때마다 나는 어땠는지 돌아본다. 그리고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꼴등의 경험을 통해 겸손과 성찰을 배웠다고 말하면 너무 과대포장이다. 겸손과 성찰의 계기를 얻었다 정도로 충분하다. 그게 사실이고. 


  이게 내가 지닌 비밀, 꼴등의 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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