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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an 29. 2024

입에 칼을 문 소설가와의 합평

숫자에 약한 내가 그 날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한다. 우연히도 그 날은 내 생일이었으니까.  22년 12월 22일. 그 날은 내 생애 첫 소설 합평이 있는 날이었다.


그 해 가을, 지역의 한 서점에서 시의 지원을 받아 독서모임과 글쓰기모임을 열었다. 둘 다 관심있었지만 독서모임은 시간이 맞지 않아 4회차 글쓰기 모임을 신청했다. 금요일 밤마다 모여 선생님의 리드에 따라 써온 글을 나누는 모임이었다. 네다섯명이 모이는 작은 모임이었지만 큐레이션이 확실한 서점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서로의 내밀한 글들을 읽고 나누는 시간은 정겹고 아름다웠다. 2번째 시간이 끝나고 주어진 글감은 내가 아는 누군가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써보기였다. 일주일간 고심하며 써보았더니 꼭, 소설속의 한 장면 같았다. 소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에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나로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황당하게 느껴질법한 충동. 그리고 운명처럼 우연히, 인스타 피드에서 소설창작교실광고를 보았다. 합정에 있는 모아카데미에서 열리는 8회차 수업이었다. 유료였지만 고민하지 않고 등록했다. 무슨 용기였는지 지금도 의아할 정도다. 그렇게 11월 부터 12월 마지막 주까지 8주간 매주 목요일에 퇴근하고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왕복 3시간이 넘는 서울나들이를 다녔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나부랭이는 마냥 들떠 첫 수업시간에 30분 전에 도착했다. 좁은 나무계단을 올라 3층 강의실에 들어갔다. 두 줄로 나란히 책상이 늘어서있고 맨 앞자리에는 음료와 간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초컬릿과 사탕 몇 알을 집어 앞자리에 앉았다. 펼쳐놓은 책을 읽는 둥 마는 둥하며 가져간 커피를 찔끔찔끔 마셨다. 차례로 사람들이 강의실에 도착하고 어색한 공기가 가득한 가운데, 각자 자신의 노트북, 패드 등등을 책상위에 올렸다. 20명 남짓한 사람들 가운데 책상위에 연필과 노트를 올려둔 사람은 나 하나였다. 곧 수업을 진행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등단하고 소설집을 내고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작가였다. 잠시 적막이 흐른 뒤에 선생님의 인사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평소보다 요란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럼, 간단하게 자기 소개부터 해볼까요?" 피할 수 없는 자기 소개의 시간이 다가왔다. 어떤 말을 하면 좋을 지 생각하는데 선생님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습작을 몇 편 쓰셨는지 같이 얘기해주세요."

습작? 써둔 소설이 몇 편이나 되는지를 말하라고? 무슨 말이지 이해를 못한 채 소개가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내 맞은편 앞자리를 지목했고, 빙돌아 내가 제일 마지막에 소개하게 되었다. 살짝 긴장하며 소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 소개가 계속될 수록 잘못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를 빼고 그 자리에 수업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절반은 문창과나 국문과 출신이었고, 나머지 반의 반은 출판계 종사자였다. 그 나머지의 반은 영화나 드라마 일을 하는 사람들과 심지어 이미 등단한 사람과 투고하고 기다리면서 감을 잃지 않으려고 신청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다들 습작은 두세 편에서 여섯 편까지 다양하게 써본 경험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틈에서 마지막, 내 소개 차례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자기 소개였다.

"안녕하세요, @@@입니다. 소설은 한 번도 써본 적 없고 왕복 3시간 걸리는 경기도에서 전철로 와서 수업 끝나면 바로 가야하지만 그래도 뒷풀이가 있으면 열심히 참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을 쓰려면 어떻게 하는 가, 소설 쓰는 방법 내지는 작법같은 이론 수업인 줄 알고 이 수업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 수업은 이미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소설가의 첨삭과 리드를 바탕으로 참여자들간의 날카로운 합평을 주고 받는 강의였다. 분명히 제대로 공고를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소설쓰기에 대해 이해가 얕았던거다. 1,2주차에는 선생님이 소개해주시는 여러 소설들을 읽고 분석해본 후 3주차부터 바로 합평에 들어가는 다소 빡빡한 커리큘럼이었다. 그러려면 3주차에는 이미 단편소설 한 편을 가지고 있어야 했고, 나는 그야말로 '멘붕'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인건 내 순서는 6주차(7주였던가)? 였다는 정도.


환불을 신청하는게 옳았을까? 다른 강의를 찾아야했을까? 써 본적도 없는 소설을 나 혼자 끙끙대고 써본다는게 말이 되나? 분량도 지금껏 써 본 적 없는 분량이었다. 최소 A4 7장 이상. 그러나 한 번도 그만둔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매주 다른 분들이 올린 글을 출력해서 열심히 밑줄 그어가며 읽고 내가 느낀 좋은 점을 이야기했다. 부족하지만 어색하게 느껴진 점도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땅굴을 파서 브라질에 가서 예수상 밑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어야 한다. 도대체 내가 뭘 안다고 나불댔을까? 내가 하는 말들이 말이기는 했을까? 부끄러움을 넘어서 수치스럽다. 어쨌거나 시간은 흘렀고, 나는 간신히 A4 7매 분량의 짧은 소설비스무리한 것(소설이라 부르기 민망한!)을 완성했다. 그리고 12월 22일 생일날. 퇴근하자마자 부지런히 전철을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 날 합평자는 세 명이었고 나는 두 번째 순서였다. 내 앞사람도 많이 지적 받은터라 분위기가 조금 무거웠다. 먼저 다같이 돌아가며 윤독을 하고 합평이 이어졌다. 아마 지금까지 이 수업에서 단 하나의 칭찬도 듣지 못한 사람은 내가 유일할거다.  부끄러워할 여유도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지적사항들을 정신없이 받아적으며 대쉬보드 위의 고개 흔드는 인형처럼 고개만 끄덕였다. 아동문학으로 이미 등단하신 분이, 비판만 받는 내가 안쓰러우셨는지 어쩔줄 몰라하시며 "아니, 좀 너무한거 같은데, 아유, 그래도, 열심히 쓰셨어요. 너무 상처받지 마시고......"라고 명백히 나를 달래주려는 의도로 말을 돌리셨다. 아, 어설픈 연민이 더 상처라는 걸 그때 또 체감했다. 모두의 한 마디가 끝나고 말투는 조곤조곤하지만 내용은 날카로운 선생님이 입을 여셨다.

"내가 잘 안 그러는데, 오늘 입에 칼을 물었네요."

그랬다. 정말 선생님은 입에 칼을 물고 나를 난도질 하셨다.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조로처럼 쌍칼에 이어 입에 한 개의 검을 더 문 검객처럼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셨다. 듣고만 있는데 불에 데인것 같다는 심정이 무언지 절절하게 깨달았다. 가장 아팠던 부분은 주제에 관한 대목이었다. 문장이나 글의 표현, 묘사나 구도 같은 문제가 아니라, 주제를 지적하셨다. 주제가 없다. 진부하고 고루하다. 글을 못썼다는 말 보다 이쪽이 더 상처였다. 선생님은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라는 친절한 조언으로 마무리 지으셨다.


주제라니. 예상치 못한 지적이었다.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두리뭉술하게 좋은 게 좋은거라고 살아왔던 내 삶의 태도와 끝까지 밀고나가지 않는 내 태만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요즘 사람들은 관심없는 주제라는 것도 많이 아팠다. 내가 늙고 고루한 사람이 되었나보다 싶은 충격과 그나마도 내 생각을 분명히 정리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너무도 선명했다.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게 다음 합평이 지났다. 수업이 끝나고 정리해서 나오는데, 약하게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전철역까지 걸어가는데, 눈물이 났다. 초등학교 1학년 받아쓰기 시험 0점 맞은 날보다 더 부끄러웠다. 한 발 한 발 쌓인 눈을 밟는데, 이런 얕은 각오로는 희망을 주는 글을 쓰지 못하는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속상해서 자꾸 눈물이 났다. 한강을 지나고 어번 환승을 해서 전철역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밤 11시가 넘어있었다. 한파였고,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내가, 글을 있을까?



마지막 수업날, 선생님의 소설집을 들고가서 사인을 받았다. 이전에 그 소설집에 수록된 글들을 읽으며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었다.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맑고,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걸까. 이런 글을 쓰는 사람처럼 아픔을 알고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수업을 마치며 어렴풋이 이해했다. 선생님이 말한 주제가 있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로구나.  


나보다 훨씬 젋은 내 첫 소설 선생님은 내가 내민 책 면지에 이렇게 적어주셨다. '앞으로 꾸준히 쓰시길요'



그 날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아직 그때 쓴 소설을 고치지 못했다. 차마 다시 읽고 고칠 자신이 없었다. 폴더 하나를 만들어 그곳에 그냥 잠들게 내버려두고 있다. 대신, 부족하나마 새로운 소설을 썼다. 조금은 앞으로 나가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닿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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