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어라 Jan 15. 2024

갤럭시 울트라가 어떻게 생겼는데?

부끄러움은 사람마다 다르다

졸업을 2주 앞둔 지난 12월 22일, 드디어 작은아들에게 핸드폰이 생겼다. 6학년이 끝나가는 지금까지 작은아이는 핸드폰이 없었다. 핸드폰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아이도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데 동의하고 있어서 그럭저럭 없는 채로 지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집과 학교가 유일한 동선이라 따로 연락할 일도 없고, 게임은 집에서 엄마아빠 핸드폰으로 하고 있어서 없는대로도 살만했기 때문이다. 가끔 자조적으로 자기는 '폰없찐'이라고 말하며 친구들과 카톡해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딱히 조른 적도 없었다. 

사실 아이 말이 아니어도 졸업 즈음에는 사줄 생각이었다. 중학교는 학교생활에 폰이 필수일테고, 졸업하고나면 친구들과 연락도 하고 싶을테니말이다. 해서 졸업 전에는 핸드폰을 해주겠다고 아이와 합의를 했었고 이제 때가 온거다.


남편이 가장 저렴한 요금제와 통신사별 혜택을 비교 분석한 후 고르고골라 아들 명의로 가입했다. 기기는 채소마켓에서 적당한 기기를 골라 중고로 구입하고 액정필름, 보호케이스까지 다 갖춰서 개통까지 끝냈다. 산타마을에서 일년 동안 크리스선물을 만드는 산타할아버지처럼 남편은 착실히 선물 준비를 마쳤다. 그 길고 복잡한 과정을 나는 모른다. 그저 입력하라는 곳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고, 내라고 하면 돈만 냈을 뿐. 


드디어 크리스마스 전전날이 왔다. 장난감을 받고 환호하며 좋아하던 어릴때처럼 아이가 좋아하겠지? 나도 핸드폰이 생겼다고 신나하며 엄마아빠를 안아주겠지? 남편과 나는 서로 말은 안했지만 내심 이런 아이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다. 심장이 작고 단단하게 뛰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폰을 내밀었다. 

"짜잔, 유니 핸드폰! 크리스마스랑 졸업이랑 축하해!"

내민 손길이 무색하게 아이는 폰을 보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울트라가 아니잖아."


울트라? 솔직히 나는 아이한테 듣기 전까지 울트라가 뭔지도 몰랐다. 울트라가 뭐냐고 되묻기도 전에 아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갤럭시 노트 울트라로 사달라고 했잖아아." 남편과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이 말을 듣고서야 삼성 갤럭시 최신 기종이라는 걸, 그러니까 그 말은 핸드폰 기계값만 백만원이 넘는다는 얘기였다. 얘가 지금 그런 고가제품을 사달라고 울고 있는건가? "이런거 쓰면 애들이 놀린다고, 창피하다고, 왕따당한단말이야아." 아들은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이런 핸드폰은 필요없다고 말하고, 아버지는 그런 비싼 폰은 사 줄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아들은 폰을 챙기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쇼파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남편이 말했다. "아니, 이게 어때서? 이게 뭐가 창피하다는거야? 어이가 없네.", "애들은 그럴 수 있어. 남들 시선 신경쓰는 나이잖아." 황당해하는 남편에게 아이 마음을 대신 전해주었다.


최신폰이 아니라고 부끄러워하는 사춘기 소년의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되었다. 남들과 같은 것을 사용하며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마음, 소유하고 있는 물건으로 사람을 평가하려는 태도, 나도 어릴 때 겪어보지 않았던가. "아무리 그래도 뭐가 부끄럽다는건지 이해가 안가." 남편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안다. 누구나 각각의 이유로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죽고싶을 만큼 부끄럽다. 또 누군가에게는 엄청나게 부끄러운 일이 내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기도 하다. 부끄러움은 그런거다. 지극히 지극히 개인적이다. 옳고 그름이 들어갈 틈이 없다. 그냥 그런거다. 


 지금은 부끄러워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말하기 껄끄럽지만 내게도 그런 부끄러움이 있다. 남들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혼자 부끄러워 말도 꺼냈던 일.(부끄럽다는 말이 도대체 번이나 나오는거냐아!) 웃지마시라, 친구어머니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는 점이다. 소개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다니! 자연스런 만남을 추구하는 기존의 연애관과 부합하지도 않는 만남이었거니와, 열정적인 사랑을 최고의 선으로 두었던 가치관과 어긋나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번째 만남에서 결혼하자고 남편을 믿을 수가 없었고 이후로 2년을 채우고 나서야 결혼을 결심했다. 그러고도 소개로 만나서 한 결혼인지라 혹시나 내가 사람의 조건을 보고 한 결혼인걸까 스스로 의심하느라 부끄러웠다. 서로 끌려서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져서 한 결혼이 아니라 적당한 사람 둘을 붙여 세운 인위적인 만남으로 결혼했다는 게 자존심 상했다. 그야말로 젊은 날의 치기와 허세였다. 지금은 확실히 말한다. 조건 보고 결혼했다면 이 남자와 안했지...... 그럼그럼.


이런 편견 가득한 부끄러움도 지니고 있었는데, 최신 기종이 아니라 친구들한테 부끄럽다는 아이 마음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다시 폰을 사줄 수도 없고, 게다가 그 비싼 폰을 사줄 생각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수 밖에. 


아이는 집에서 게임용으로만 핸드폰을 썼고, 절대로 학교에 가져가지 않았다. 졸업식 당일까지. 하지만 부처님은 손바닥 위에 손오공을 올려놓고 있지 않은가. 내 아이 성향은 내가 안다. 기회를 잡아야했다. 졸업식에 가는 큰 애 주머니에 얼른 작은아이 핸드폰을 넣어줬다. "졸업식 끝나고 이따가 유니 주머니에 얼른 넣어줘." 내 계산은 이랬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안 가져간다고 실랑이 벌이는 건 부끄러워할테니 어쩔 수 없이 챙겨갈 것이고, 친구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보면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고, 친구와 놀다보면 자연스레 자기 핸드폰을 꺼내 사용할거다. 


졸업식이 끝났다. 후다닥 사진을 찍고 후다닥 인사를 나누는 사이, 큰 애는 엄마의 미션을 충실히 이행했다. 아이는 주머니에 새 핸드폰을 넣고 친구와 사이좋게 학교를 나섰다. 그날 오후, 아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친구들이랑 같이 핸드폰 게임하면서 놀고 있다고. 내 계산이 맞았다. 기분좋게 아들에게 카톡 이모티콘을 선물로 보내줬다. 자기 핸드폰이 다른 아이들보다 떨어지는 기종이라서 썩 내켜하지는 않지만, 거부하지 않고 이제는 잘 쓰고 있다. 


아이가 자신의 핸드폰을 친구들 앞에서 꺼냈을 때, 상대의 반응을 걱정하며 몸이 위축되었을 때, 생각만큼 무시당하지 않는 것을 알고 조금 편안해 졌을 때, 그때마다 아이 마음에는 어떤 화학작용들이 벌어졌을까?  자신의 부끄러움을 마주하고 흘려보낸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해소되는 경험을 통해 마음의 벽이 더 튼튼해졌기를 바란다. 내 아이가 그러길 바라고, 나 역시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은 남들이 판단할 수 없다. 각자의 이유로 부끄럽고 각자의 이유로 부끄럽지 않다. 타인에게는 작은 깃털처럼 보이더라도 자신에게는 천근의 무게로 다가오는 부끄러움이 있다







이전 06화 실패한 완전범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