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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Feb 12. 2024

화장, 그 어렵고 험한 길

화장과 나

대학교 2학년 봄, 교생실습을 나가면서 처음으로 화장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했으니 30년은 화장을 하고 살았다는 얘긴데, 왜 저는 이렇게 화장을 못하는걸까요? 아니 화장 이전에 화장품도 잘 모르는걸까요?


지난 강릉여행때 일입니다. 씻고 나서 얼굴에 바를 화장품을 찾는데 파우치안에 튜브형 크림이 보이더라고요. 이거라도 있으니 됐다싶어 얼굴에 바르는데 뻑뻑하니 잘 안 발라지더군요. 얼굴이 허옇게 되어서 웃긴다 했는데 조금 지나니 다 흡수가 되었어요. 저녁에 바르고 다음날 아침에도 발랐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좀 따끔거리더라고요. 물갈이 하나, 하고 별 생각없었습니다. 그 날 물놀이를 하고 나와서 옷을 갈아입기 전에 또 크림을  얼굴에 찍었어요. 그리고 문지르기 전에 손에 쥐고 있는 튜브를 봤는데 어딘가 어색합니다.

 어라? 이거, 수분그림 맞는건가

그 놈이 그 놈아닌가요? 너무 크림같이 생겼잖아요...ㅠ.ㅠ 오른쪽이 문제의 폼...

크림을 들고 찬찬히 읽어보니 ''이라는 글씨가 그제야 보였습니다. 폼? 얼굴 씻을 때 쓰는 그 폼? 네, 맞습니다. 클렌징폼이었어요. 영어에 약하다는 게 이런데서도 드러나는군요. 아니 이런 도토리 씨 파먹을 일이!!!얼른 다시 욕탕으로 들어가 물로 씻어냈더니 거품이거품이 버글버글하게 나더군요. 이걸 이틀이나 얼굴에 바르고 다녔다니, 아니 내 피부가 다 먹었다니! 아이고 맙소사. 누구한 말하기도 부끄럽습니다, 시력 핑계로 통할 일이 아니네요. 트러블 안 생긴게 다행입니다. 하긴, 풋크림도 얼굴에 바르고 잘 지냈으니까요 뭐.  


비밀인데요, 이런 실수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샴푸와 트리트먼트를 바꿔서 머리를 감은 적도 있어요. 감으면서 왜 거품이 안나나, 이 샴푸 별로네. 이랬답니다. 이 얘기를 동생한테 했는데, 옆에서 듣던 열 세살 조카가 "이모 바보야?"라고 하더군요. 제가 눈은 나쁜데 귀는 밝아서 다 들리더라고요. 잠시만요, 눈에 눈물이...... 


트리트먼트또 흑역사가 하나 생각나는군요.  대학 졸업하고 나서로 기억합니다. 사촌의 결혼식이었어요. 온 집안 친인척들이 다 모이는 자리였어서 일찍부터 씻고 광내고 준비를 했지요. 그때 신경 좀 쓴다고 머리에 바르는 트리트먼트라는 걸 처음 써봤죠. 

"이야 이런거까지하다니 나 오늘 좀 과한거 아냐?"

이런 소리를 해가면서 몸단장을 했습니다. 머리를 감고 나서 머리를 말리고, 트리트먼트를 손에 짜서 머리에 바른다음 모양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옷을 입고 나갔지요.  그 상태로 결혼식에 갔고, 가족 사진을 찍는데, 옆에섰던 키 큰 사촌 오빠가 제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야, 너 혹시 머리 안 감고 나왔?"


죠, 저는 트리트먼트가 머리에 코팅을 해주는, 그러니까 왁스같은 거라고 생각한거에요. 트리트먼트를 머리에 바르고 물로 헹구지 않았다구요! 그러니 남이 보기엔 아주 기름지고 떡져보인거죠. 제 머리가 딱 그래보였던거에요. 사촌 오빠는 얼마나 망설이다 말을 꺼냈을까요? 그 말을 듣고서야 뭔가 잘못됐다는걸 알았답니다. 그때까진 문제라는 것도 몰랐어요. (미처버리겠습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직장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화장을 계속 했습니다. 그림은 잘 그려도 내 얼굴 눈썹그리는건 어렵더군요. 모나리자마냥 눈썹이 없어서 평생 그리며사는데도 항상 모양이 다르고 매일이 새로워요.  아이라인은 또 얼마나 엄청난 집중력과 세심함을 요구하던지요. 정신없는 출근길에 화장을 하다보면 눈썹이 비뚤고 아이라인이 짤리고 파운데이션을 제대로 펴바르지 않아 얼굴에 뭉쳐있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어느 날은 입술을 까먹거나 어느날은  눈썹을 안 그리고 나가기도 했죠. 교실에서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날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 깜짝 놀라서 얼른 화장실에 가서 4B연필이나 파스텔로 쓱쓱 눈썹을 그린 적도 많습니다.


밥먹고 양치만 간신히 할 정도로 점심시간이 짧다보니 수정화장도 잘 못합니다. 그 시간에 커피 한 잔 타오겠어요.  당연히 오후에는 생얼과 구분이 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어떤 때는 아이들이 제발 5교시에 입술 좀 바르라고 사정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아파보인다나요. 나이드니 입술 색이 빠져서 그런거다, 너희들이 말을 안 들어서 속이 썩어서 그런거다 대꾸하지만 6학년 아이들에겐 안 통하더군요.


그래도 화장법을 배워보고 싶어서 인스타로 화장법 릴스도 자주 보고 5분 안에 끝나는기는 해도 나름 정성들여 화장을 합니다. 

눈썹도 꼭꼭 열심히 그리고(완벽한 비대칭으로 완성되는 짝짝이눈썹!) 

컨실러도 발라보고(감춰도 드러나는 자기주장 강한 기미 주근깨!) 

입술도 솔을 이용해 정성껏 칠합니다.(커피 한 잔만 마셔도 사라지는 립스틱! 먹어서 없앤다!) 


그런데 결과물을 보면 그닥 이네요. 제발 원판 얘기는 하지말아주세요. 제가 더 잘 알고 있어요. 수박이  될 생각은 없어요. 호박이어도 줄 좀 예쁘게 긋고 싶은데 왜이리 어렵나요. 예쁘고 정성스럽게 화장하고 거울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제 얼굴에 줄자를 대고 그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화장대 앞에서 작아지는 나, 살짝 부끄럽네요. 언제쯤 제대로 줄을 그을 수 있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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