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요일, 지역의 도서관에서 백수린 작가의 강연이 열렸다. 지난 달 도서관 사이트에서 강연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신청하고 기다렸던 강연이었다. 두 권의 책을 가방에 넣고 출근하는 아침부터 설렜다. 퇴근하고 바로 도착한 도서관에서 작가님의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작가와 작품이 닮는다는 것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잇었다. 한 시간 십여 분의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 안녕하세요 작가님, 팬입니다.(웃음)지난 2월에, 작가님의 책 [눈부신 안부]로 독서모임을 갖었습니다. 선자이모와 근호의 관계에 대해 모임에서 의견이 둘로 나뉘었는데요, 자신의 욕망대로 살지 못하는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 더 극명하게 드러나서 찬란한 자기자신으로 살라는 메세지에 어울리는 설정이었다, 바로 그래서 감동이었다는 쪽과, 굳이 그렇게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최근의 트렌트를 쫒은건 아닌가 싶어 아쉬웠다는 쪽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작가님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 작가님의 답변 부분은 녹취가 아니라 부정확할 수 있어요. 제 기억에 의존해서 재구성해보았습니다. 스포가 될 수도 있어요!
충분히 의식했던 부분이다. 퇴고도 많이 했고 마지막까지도 바꿀까 고민도 많이 했었다. 그렇지만 밀고나가게 된것은 그게 비판을 감수할 만큼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읽으시고 근호가 반전이라고 생각하신다. 하지만 내가 의도했던 반전은, 혜미의 편지가 거짓이라는 것을 선자가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혜미의 짧은 편지에서 즉각적으로 거짓을 간파할 수 있어야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별에 관한 설정이 가장 적합했고, 그렇게 방향을 잡고 보니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파독간호사들의 모습에서 더 다양하고 풍부한 인물들이 살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고, 서사도 풍성해지며 감정선도 더 섬세히 그려낼 수 있었다. 그로인해 혜미의 성장도 그려낼 수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렇게 썼다. 그에 관해 공격이 있다면 내가 감수해야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답변을 듣고 더욱 작품에 대한 감동과 여운이 더욱 깊어졌다. 북토크를 참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가 가능해진다. 게다가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작가의 설명으로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라니,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저자를 만나고 실망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 처럼 팬심이 더 깊어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독자의 평범한 질문에 진지하고 아름다운 답을 전해주신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모든 시간이 끝나고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수줍게 책을 내밀고 이름을 말하자 작가님은 귀엽고 다감한 글씨체로 이렇게 적어주셨다.
"다정한 마음이 우리를 구원할거에요." - 백수린
내가 택을 붙여두었던 바로 그 구절이었다.
브런치에 올리는 300번 째 글이다. 2021년 2월 4일 첫 글을 올리고 3년 동안 마음을 담아 써왔다. 브런치와 읽어주시는 구독자님, 같이 쓰는 작가님들 덕이다. 조금 더 욕심부린다면, 앞으로 더도덜도 말고 30년 동안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지금부터 계속 -
*300개 글 발행기념 캡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