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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Feb 19. 2021

산을 더 좋아하나요? 바다를 더 좋아하나요?

산과 바다, 어느 쪽?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질문인 것 같습니다만, 산과 바다 중에 어느 쪽을 더 좋아하시나요? 산의 매력, 바다의 매력이 서로 달라 고르기 어렵다는 분들도 계실테지만, 확실히 한 쪽을 더 선호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요. 제가 그렇습니다. 저는 확실히 산을 더 좋아해요.    

  

어릴 때 문자 쓰는 걸 즐겨하시던 아버지가 꼭 한자를 섞어 [인자요산이요, 지자요수라]고 들려주시곤 하셨어요. 대충 말해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지요.      


제가 바다보다 산을 더 좋아한 이유는, 오로지 바다가 무서웠기 때문이죠. (제가 특별히 어질거나 지혜롭지 못해서가 아니여요!)

     

물이 무섭다거나 상어가 무서워서가 아니었어요. 어릴 땐 바닷가에서 어깨 껍질이 다 벗겨지도록 놀기도 했는걸요. 이것과 저것 중 고르는 취향의 문제도 아니에요. 온전히 제 내면의 문제였어요. 그래요, 어른이 되어가면서 상처받고 관계에서 좌절하고 사람들과 불편함을 주고받게 되면서 바다가 무서워졌어요.      

바닷가에 서면 다 드러나 있어서, 숨을 곳이 없어서 무서웠어요, 마치 광장공포증처럼. 

탁 트인 해변가에 서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게 아니라 발가벗겨진 채 내동댕이쳐진 것 같아서 불안하고 무서웠어요, 상처받은 나를 숨길 수 없어서.    

  

반면에 산에 들어가면 울창한 나무와 바위들, 곳곳의 숲들 구비진 계곡길. 모든 곳이 나를 감싸고 있어서 안정되고 평화로움을 느꼈어요. 숨을 수도 있고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고 나 홀로 일수도 있는 공간이 보장되어서 편안했어요.      


산을 오르며 느끼는 고독감이 파도가 끊임없이 내게로 밀려오는 두려움보다 더 좋았어요. 

누군가에게 드러내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와 마주하지 않을 수 있는 산이 펼쳐진 모래사장만큼 잔인하게 쏟아지는 햇살보다 좋았어요.      


그렇게 20대, 30대가 지나고 나서, 이제야 조금 바다가 편안해졌어요.

쉬지 않고 일을 하며,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남편과 아이를 겪으며, 

내가 책임지고 감당해야할 일들 속에서 

끝없이 실패하고 좌절하며 40대가 되었어요.      


여린 파도에 쓸려 자갈이 모래알갱이가 되듯이 둥글둥글해졌고 상처에 너그러워졌어요. 그러고 나니 이제 바다가 조금은 덜 무섭네요. 속이 후련하다는 느낌을 수평선을 보며 가지게 되었죠. 지금의 나는 산처럼 바다가 좋아지고 있어요. 조금은 자란 기분이에요.     

 

저와 반대의 이유로 산을 싫어하고 바다를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산에서 답답하고 구속되는 느낌을 받는다거나, 바다에서 자유롭게 홀가분한 기분을 느낀다거나. 어떤 내면의 과정 때문에 그럴까요. 문득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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