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웁니다 -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어떤 일이건 억지로 시키는 건 한계가 있다는 의미고,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속담이다.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 대상 강연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멘트기도 하다. 나는 일찌감치 조상의 지혜가 담긴 저 속담이 진리라는 걸 깨달았다. 큰아들을 통해, 뼈저리게.
우리 아들은 공부를 못한다. 엄마들의 겸손, 혹은 반어적인 자식 자랑이 아니다. 정말로, 진짜로, 매우, 성적이 낮다. 공부하기 싫어하고 하는 법도 모르고 이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커녕 생각도 없다. 책을 사주고, 인강 등록해주고, 온갖 환경을 조성하며 끌고가도, 우리 아들은 책상 앞에 앉아 버티는게 고작일 뿐, 공부를 하지 않는다. 아니다. 하긴 한다. 코끼리 눈꼽만큼은 한다. 엄마 아빠가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면 겨우 책상 앞에 앉아만 있는다.
이 모든 게 사실 다 내 탓이다. (라고 아들은 주장한다) 1학년이던가, 학습지 풀리다가 승질이 나서 아들의 학습지를 찢었던 것이 심각한 트라우마가 되어 자신이 공부를 거부하는거란다. 무수히 사과를 했음에도 뻔뻔하게 엄마를 약올린다. 어찌되었건 어릴 때 공부습관을 길러주지 못한 것은 분면 내 패착이다.
그렇지만 -
'학습'學習에서 '학'學은 배우는 것이고 '습'習은 스스로 익히는 과정이다. 강의를 통해 지식을 배웠으면 스스로 문제를 풀고 해결하며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한다. 아들은 이 '습'의 과정이 없다. 그저 인강을 듣고 문제풀이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단어를 외우지 않고 강사의 해석을 듣고 있는게 도대체 무슨 '공부'냔 말이다.
말의 상태가 다 다르듯 아이마다 타고난 기질, 성향, 재능, 두뇌차이가 있을거다. 큰아들에게 공부는 태어났을 때 부터 이미 가질 수 없는 무언가 길일지도 모르겠다. 인정한다. 하지만 짐승도 먼 길 가기 전이라면 물을 마셔두는 지혜는 가지고 있을거고, 주인이 물을 마시라고 가져다주면 먹는 시늉이라고 할거다. 아무리 공부에 흥미가 없고 하기 싫더라도 평범한 대한민국 고등학교 2학년이라면 1학기 중간고사는 열심히 해야한다고 생각해야할 것 아닌가! 도대체 이놈의 아들은 공부를 왜 안 하는걸까? 간신히 책상 앞에 앉혀 놓으면 뭘하나, 스스로 머릿속에 넣지를 않는데. 하기 싫은거 이해하고, 안했던 걸 하려니 힘들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는 법을 몰라서 더 힘들어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엉덩이힘으로 오래 버티기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학생으로 그 정도 예의도 없단 말인가. 다 큰 자식 등짝을 후려칠수도 없고 부글거리는 속으로 노려볼 뿐이다.
매번 힘들게 강가로 끌고 가서 심지어 그릇에 물을 떠 입에 받쳐주기도 하는데, 아들은 쳐다도 안 본다. 목말라 죽으면 죽으리, 절대 마시지 않겠다며 버팅기는 저 망나니가 내 아들이다. 한숨이 절로 나오고 흰머리가 쑥쑥 자란다. 어쩌겠나.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순 있어도 물을 마시게는 못한다지 않나.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탈수로 쓰러지고 나면 다음 부터는 자기가 알아서 마시겠지. 물을 찾을 때 마실 수 있게 강이 흐르는 곳을 알려만 주자. 이 마음으로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그래,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이냐.'
......오늘은 중간고사 이틀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