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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n 17. 2024

두 시간 동안 이사하기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나의 다이어트, 너의 이사.

나의 다이어트는 굳이 주말에 시작하지 않아도 되지만, 너의 이사는 평일에 하기 힘들지.

그래, 결정했어. 오늘은 너의 이삿날이다.




봄날은 지났고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 미뤄두었던 초록이들 이사를 단행했다. 일요일 오후3시 30분, 남편이 거실에 분갈이용 매트를 깔고 분갈이용 흙을 꺼내왔다. 시작이다.


먼저 벌써 몇 년동안이나 분갈이도 안하고 구석에서 혼자 자라고 있던 엽란을 꺼냈다. 예상대로 화분이 뿌리로 가득하다. 살살 흙을 털어내고 엉킨 뿌리를 풀어서 잘 나눴다. 엽란이 심겨져 있던 화분으로 어느새 웃자란 만리향을 옮겨주었다. 커버린 몸집이 네모난 화분에 들어가자 훨씬 안정감있어 보인다. 만리향이 심겨져 있던 화분에 엽란 두 뿌리를 잘 말아서 넣고 타버린 잎부분을 잘라주었다. 재투성이 신데렐라가 무도회장에 들어선 것 마냥 생기있어보인다. 나머지도 작은 화분에 옮겨 세 식구로 만들었다.


4월 24일 씨앗을 뿌려 발아시킨 방울토마토도 제대로 각방을 만들어줬다. 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씨앗이 어느새 사춘기 모종이 되었으니 따로 살림을 내어줘야한다. 햇볕 받고 충분히 자라서 얼른 토마토를 내놔라, 콩국수에 올려먹을테다. 


다음은 몸집이 두 배도 넘게 불어버린 보스턴고사리차례다. 킹사이즈 침대가 들어갈만큼 넉넉한 화분으로 옮겨주니 그제야 이파리가 조화롭게 빛이난다. 물을 듬뿍 주고 자리를 옮겨주었다. 이제 안정기에 들어선 7,8개월 임산부같아보인다. 


마지막으로 셀렘도 흙갈이를 했다. 영 시원찮아서 죽어가는 걸까 걱정스러운 요녀석까지 뿌리를 다듬어 적당한 곳에 옮겨주니 다용도실 정리까지 끝낸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한차례 이사를 끝마쳤다. 



이 모든 과정은 다 나의 총괄감독, 진두지휘하에 진행되었다. 웃옷도 벗어제끼고 열심히 움직이는 남편의 수고는 나의 세세하고 깊이있는 디렉팅 덕에 빛을 발할 수 있는 거다. 베란다 물청소 마무리는 내가 하고, 거실 뒷정리와 청소는 남편이 맡아서 깔끔하게 두 시간만에 이사를 끝냈다. 이제 몸살하지 말고 뿌리 잘 내리고 새 잎 내서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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