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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Apr 15. 2024

흙을 닮은 사람

헐레벌떡 달렸던 한 주가 지나고 주말이 되면 나보다 더 목말랐을 초록이들을 돌본다. 여전히 옷장에 겨울옷과 봄옷이 뒤섞여 쌓여있지만 쳐다보지 않고 남은 에너지를 모아 베란다로 나간다. 창문을 활짝 열고 하나하나 매만지며 상태를 살피다보면 절로 소진된 에너지가 차오른다.


오늘처럼 볕좋고 바람 좋은 날에는 영양제를 섞어 분무기로 잎에 뿌려주기도 하고 샤워하듯 전체를 흠뻑 적셔주기도 한다. 천천히 빨아들이도록 화분 밑부분을 물에 담가두는 아이도 있고 골고루 흙에 물을 부어주는 아이도 있다.


식물에 물을 주는 순간은 때로 경건한 기도의 순간같다. 귀를 기울이면 메말랐던 흙이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린다. 촉촉하게 젖어가는 흙을 보며 나도 흙 같은 사람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타인의 말, 타인의 마음이 그대로 스며드는 고운 흙처럼 단단하게 굳어 타인의 말을 튕겨내는 사람이 아니라 부드럽게 내어주고 부드럽게 내보내는 사람이 되고싶다.


 물주기를 마치고 베란다청소까지 끝내고 허리를 폈다. 한결 기운이 넘치는 초록색을 바라보고 있으니 절로 뿌듯하다. 뿌리는 흙이 품고 있는 물속에서 필요한 것은 건져올리고 의미없는 것은 흘려보낸다. 흙도 식물도 나보다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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