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사이건, 친구 사이건, 귀엽게 보이면 답이 없단다. 어느날 상대가 귀엽게 보이기 시작하면, 완전히 빠졌다는거고, 이제는 헤어나올 수 없는거란다. 이미 사랑이 깊어질대로 깊어진 상태라서. 오죽하면 이런 짤이 돌겠는가.
귀엽다. 국어사전에는 예쁘고 곱고 애교있어 사랑스럽다고 풀이되어있다. 문제는 귀여운게 아니고, 귀여워 '보인다'는데 있다. 남들 눈에도 귀여운 대상을 귀여워하는건 당연하다. 미소짓는 어린 아이, 천진한 동물, 동글동글하고 무해해 보이는 캐릭터 등등등. 그런데 객관적으로 전혀 귀엽지 않은, 남들 보기엔 전혀 귀여울리 없는 우리 남편이, 내 아들이 귀엽다고? 그건 내가 귀엽다고 느끼는거다. 어째서일까?
상대를 귀엽게 느끼는 마음에는 '용서'가 있다. 무얼해도 이해되는 마음. 내가 너를 용인하고 받아들인다는 마음이 있어 상대가 귀엽게 보인다. 숱이 줄어 옹송그린 뒤통수, 각질이 가득 일어난 발뒤꿈치, 주름이 잡히는 손등을 귀엽다고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어떤 짓을 하건, 어떻게 되건 받아들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답이 없는거다. 용서가 되니까. 이 용서의 마음은 연민이, 이해가, 역지사지가, 함께한 시간이 쌓여서 생긴다. 그래서 파스텔처럼 흐리고 은은한 색감이지만 단단하고 질기다. 귀여워 보이는 마음은 굵고 짧은 밧줄이 아니라 가늘고 긴 여러 겹으로 된 실이다. 밧줄로 꽁꽁 묶은 건 칼로 자르면 되지만 누에고치처럼 여러 겹 실로 감아버리면 베어버리는 것도 찢어버리는 것도 힘들다. 스스로 벗어버리지 않으면 벗겨지지 않는다.
어머님을 먼저 보내고 혼자 지내시는 아버님이 올해로 85이 되신다. 좋은 요양시설을 고민해보자는 이야기가 아주버님에게서 나왔고, 지난 주에 아버님을 모시고 수원의 한 시설을 둘러보고 왔다. 그날 저녁 남편이 말했다.
"우리 같은 날 같이 죽자."
"지금 나를 순장하겠다는거야? 왜 이래, 나는 오래 살거거든"
"그래, 너 혼자 오래오래 살아라. 배신자."
이 말을 하고 토라지는 남편이 너무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 답이 없다.
"아냐, 나는 당신없으면 못살지. 어떻게 살아. 같이 죽어야겠으니까 자기가 힘내서 오래 버텨봐. 나만큼 살려면 관리 좀 해야할걸?"
언제 어떻게 죽을 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서로를 귀여워하고 서로를 귀애하는 그런 사이로 사이좋게 늙어가고 싶다. 답따위 없어도 좋으니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