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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이 예민해서 말할 수 있는 것

우리 사회의 감수성에 대하여

by 피어라


어릴 때 방학마다 생활 통지표를 받아오면 늘 적혀 있던 말이 있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다양한 감정을 잘 느끼고 감정을 잘 나타내는 아이에게 선생님은 '감수성이 풍부하다'라고 써주셨다. 아마 그 시절에는 그저 아무때나 울다 웃던 아이였을지도 모르겠다.


감수성 感受性.


감수성이라고 하면 창 밖에 지는 가을 잎을 보면 눈물을 글썽이다가 굴러가는 낙엽을 보고 깔깔대고 웃는 여고생이 떠오른다. 동시에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멀고 여리고 감정적인 사람, 예민한 사람에게 쓰는 표현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어릴 때 주변으로부터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칭찬보다 비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연약하고 불안정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스스로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헌데 요새 '감수성'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인권감수성, 젠더감수성, 환경감수성 등 방송이나 신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교육분야까지 감수성이라는 말을 폭넓게 사용한다. 이때의 감수성은 내가 어릴 때부터 들어온 그 감수성과 다른 결을 지녔다. 감정적인 풍부함 말고 사회적인 공감과 옮바름을 표현하는내는 말로 확장되어 쓰이고 있다. 인권에 대해 더 많이 고려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성차별에 대해 더욱 집중하고 찾아내는 것, 환경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공감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것. 이럴 때 우리는 감수성이라는 말을 붙인다.


나와 세상의 스펙트럼을 인지하고 그 차이를 받아들이면서 공감할 수 있는 힘, 나 홀로가 아니라 이웃과 연대할 수 있는 힘을 감수성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그런 예민한 감수성을 나는 어릴 때부터 내면에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내 개성이 성장과정에서는 자신의 연약함을 보여주는 약점이라고 여겼지만, 지금 사회에선 오히려 장점으로 발휘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활통지표에 적혀 있던 한 줄. ‘감수성이 풍부한 어린이’는 감수성이 풍부한 중년의 아줌마가 되었고, 비로소 긍정하게 된 내 안의 감수성으로 감히 꿈을 꿔본다. 내 마음의 예민함을 외부로 확장시켜나가면 더, 더, 민감하게 공감하고 연대하면서 내 삶이 풍부해지지 않을까하고. 차별적인 환경에 민감하고 다양한 층위의 언어에 관심을 기울이며 굳어있는 편견에 틈을 내는 감수성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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