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디 추운 월요일 아침이었다. 운동장에 전교생을 세워두고 시작된 교장선생님의 훈화는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천 명 넘는 아이들이 운동장을 꽉 채우고 있었지만, 휘몰아치는 칼바람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귀는 떨어져 나갈 것 같았고, 얇은 솜점퍼를 뚫고 들어오는 냉기에 온 몸이 벌벌 떨렸다. 발끝이 얼어버릴 것 같아 운동화를 신은 채로 발을 꼼지락거리기라도 할라치면 바람보다 매서운 담임선생님의 눈초리가 날아들었다. 손바닥을 비비거나 입김을 불어 귀를 덮을 생각도 못하고 그저 시간을 버티는 수 밖에 없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콧속으로 얼음조각이 들어오는 것 같은 국민학교 아침조회 시간이었다.
그때 입고 있던 겉옷을 아직도 기억한다. 매일같이 입고 다닌 유일한 잠바. 여자아이들이 잘 입지 않는 촌스런 푸른색에 충전재를 얇게 집어넣어 효과적으로 추위를 막아주지 못하던 겉옷이었다. 심지어 버석거리는 재질이라 겨울에는 더 차갑게 느껴졌다. 당연히 겨울은 날카로운 바늘같이 추운건 줄 알았다. 남들도 간신히 추위를 견디고 있는 줄 알았다. 다음해 엄마가 새 잠바를 사주시기 전까지.
새 잠바를 입고 등교한 월요일에도 어김없이 애국조회가 열렸다. 종소리에 맞춰 다들 얼어붙은 복도를 지나 운동장으로 나가 줄을 섰다. 키가 작아 앞에 선 탓에 바람을 직격으로 맞으며 한껏 웅크렸는데, 꽤 버틸만했다. 옷 하나가 추위를 이 정도로 막을 수 있다고? 신기해서 자꾸 옷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작아서 입지 못하는 그 퍼런 잠바보다 훨씬 따뜻했다. 덕분에 그 후의 운동장조회와 중학교 입학식까지 벌벌 떨지않고 견딜 수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하던 해, 처음으로 오리털 파카라는 걸 입었다. 이미 유행이 시작된 지 한참 지나 주변에 다들 오리털 파카를 입고 다니고 있었지만, 우리 가족 중에서는 내가 최초였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부풀려진 소매와 몸통에 겉감과 안감의 색이 달라 뒤집어 입을 수 있는 양면파카였다. 옷을 입자마자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렇게 따뜻한 옷이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나도 드디어 남들처럼 오리털 옷이라는 게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는지, 정말 뛰어난 보온효과를 지닌 옷이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파카를 입고 나가면 아무리 추운 날씨라해도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유행이 지나 아무도 입지 않을 때까지 몇 년 동안은 겨우내내 입었다.
잠바 하나로 겨울을 나던 소녀는 이제 장년의 아줌마가 되었다. 고급진 코트나 비싼 모피, 유명브랜드 패딩은 없지만 대신, 질좋은 내복과 롱패딩으로 충분히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추위를 막을 옷이 없어 곱아진 손으로 벌벌 떨지 않고, 찬바람을 막아줄 집이 있으며, 꽁꽁언 내 손을 자신의 맨살로 녹여줄 가족도 곁에 있다. 이제는 아무리 한파라고 뉴스마다 호들갑을 떨고 재난안전문자가 쏟아져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폐속에 얼음이 박힐 것 같던 날들을 기억하는 것은 추위보다 가난, 가난보다 외로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