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대길 건양다경

by 피어라

내 시어머니는 6년 전 1월 29일에 돌아가셨다. 폐암치료 중 허리 통증이 심해져 입원하셨다. 종양이 디스크를 누르고 있었지만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었다. 다시 집으로 못가지 싶다고 말하신 어머니는 당신의 직감처럼 그해 봄을 보지 못하셨다. 우리는 차가운 땅 속 말고 한 겨울 눈같이 새하얀 유골함에 어머니를 묻었다. 겨울이었다.


혼자 남은 시아버지는 그럭저럭 잘 지내셨다. 봄, 여름, 가을, 다시 겨울. 몇 번을 돌아 맞이하는 이번 어머니 기일에 아버지는 어머니를 보러 가지 못하셨다. 그 전 주 주말 배가 아파 응급실에 다녀오셨기 때문이다. CT를 보던 의사는 췌장에 안 좋은 게 보인다며 정밀검사를 권했다.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췌장암을 각오했다.


내일모레면 입춘이다. 주말에 창문에다 입춘첩을 붙였다. 봄이 시작되는 입춘을 맞아 크게 좋은 일이 생기고 밝은 기운이 가득하여 좋은 일이 많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붙이는 민간의 풍습이다. 지금껏 해 본적도 부모님도 하신 적 없었지만 올해는 왠지 그러고 싶었다. 내가 붙인 입춘첩은 뛰노는 붉은 말을 배경으로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한자가 씌여있고 오방색과 하얀꽃이 그려져있는 작은 일러스트엽서다.


보통 입춘대길이라는 말은 많이들 알지만 짝이 되는 건양다경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입춘대길이 떠들썩하게 좋은 기운을 끌어들이고 싶어하는 농부들이 활기넘치는 함성이라면 건양다경은 조용히 기운을 모아서 지켜드는 어린 소녀의 미소같다. 로또 당첨, 승진, 합격 같은 좋은 일(대길)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보다 평안과 소소한 기쁨을 바라는 소박한 마음이 내게는 더 정겹고 기껍다. 세울 건, 햇볕 양, 많을 다, 경사 경. 읽을 때마다 비질이 잘된 깨끗한 마당에 댕기를 늘어뜨린 어린 여자아이가 가득한 봄햇살을 두 팔 가득 끌어안고 살며시 웃는 장면이 떠오른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따사롭고 평화로운 기운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입춘대길의 2월은 시큰둥하지만 건양다경의 2월은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응급실 다녀오시고도 아버지는 속이 메스껍고 오심이 들어 제대로 식사를 못하셨다. 일주일 동안 자식들이 번갈아 죽을 해들고 가며 식사를 살펴드렸다. 들고 가는 것은 음식 한 그릇이지만 건양다경 말 뜻 그대로 따스한 햇살을 가득 모아서 아버님 손에 담아드리고 싶었다. 그 기운을 한 입에 꿀꺽 삼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서 맞이하는 여섯 번 째 봄이 춥고 아픈 날이 아니라 따스하고 평안한 나날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창문에 테이프를 꾹꾹 눌러붙이며 건양다경의 봄날을 그려보았다. 올봄, 늙으신 시아버지의 건양다경한 풍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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