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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14. 2021

아무말대잔치 1 -식구들의 오줌소리

아침을 여는 오줌소리를 듣는다


아침에 가족 중 제일 먼저 일어나 혼자 컴퓨터를 켜고 아무 글 대잔치를 벌려본다. 아무 글이나 쓰는 모닝페이지처럼 내 창조성을 막지 않고 무조건 흘러나오는 글을 옮겨본다.  일주일 중 하루, 일요일 아침에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이렇게 손가락을 움직여보고 아무글이나 떠오르는 대로 쓰고 있노라면 빈 거실에서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춤 추는 기분이 든다. 나 혼자 무아지경에 빠져있지만 가족 중 누군가 들어오는 순간 민망함에 그 모든 움직임이 멈춰버리는 것 처럼, 내가 쓰고 있는 글을 가족이 읽는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워 저절로 창을 닫아버리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며 자판을 두드리면 식구들이 하나둘씩 일어난다.


 먼저 알파룸에 혼자 이불펴고 자는 남편이 스르륵 미닫이 문을 열고 나와 화장실을 간다. 화장실에서 쪼로로로록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 얌전하고 가느다란 물줄기 소리가 들린다. 세월의 흐름에 순종하고 있는 남편의 오줌소리가 내 것인양 애잔하다. 손씻는 소리가 나고 30분 쯤 지나면 이번에는 화장실에서 코끼리가 오줌을 싸는 듯도하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듯도 한, 어마무시한 소리가 들린다. 15살된 큰 녀석이다. 힘차고 자유분방한 오줌줄기 소리가 자신이 십대라고 고함치는 듯 하다. 분명 변기 여기저기에 오줌방울이 다 튀었을거다. 화장실 냄새의 주범은 큰 녀석이다. 한차례 화장실에서 부산한 소리가 들리고 나면 한동안 잠잠해진다. 아침부터 느긋하게 핸드폰하고 놀 요량으로 졸린 눈을 부비며 일어나는 큰 녀석과 달리 작은 녀석은 늦게 일어난다. 한 시간 쯤 지나야 쪼로로록하는 귀엽고 경쾌한 소리가 화장실에서 들릴거다. 맑은 샘물이 흐르는 듯한 소리로 들리는 것은 막내라고 마냥 귀엽게만 느껴지기 때문일거다.


 평일에는 식구들 일어나기 전에 내가 먼저 출근하기때문에 아침을 여는 가족의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다. 아침인사를 나누지는 않더라도 오늘 같이 한 명씩 아침을 여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는 휴일 아침이 참 좋다.

햇살도 밝고 커피도 향긋한데, 이렇게 식구들의 배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행복을 느끼는 내가 참 변태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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