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어라 Dec 22. 2021

점도 유전이랍니다.

할아버지는 이마 한 가운데  점이 세 개  있었다. 어린 아이 새끼손톱 만한 크기의 짙은 색 점이 동그렇게 불거져나와 있는 것도 신기한데 나란히 세 개씩이나 있다니. 흔치않고 신기해서 어릴 때 명절이나 방학 때 시골에 내려가면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만져보기도 했다. 살덩어리는 만지면 말랑했지만 아무리 잡아당겨도 떨어지지 않았고 결국 할아버지는 “이놈아, 아퍼!”하시며  나를 무릎에서 쫓아 내시곤 했다.


어린 마음에는 할아버지 이마의 난 조그만 점이 내 몸에 난 까만 점과 같은 것일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그저 속으로 우리 할아버지는 혹이 달렸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친구들한테 “우리 할아버지는 이마에 혹 났다!”라며 자랑아닌 자랑을 한 적도 있었다. 신기해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안 믿는 친구들도 있었다. 혹이라고 하면 옛이야기 속의 영감님이나 김일성 목 뒤에 붙어있는 걸로 알던 때였으니까.


지금도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방안에서 태우시던 담배 냄새와 이마에 조로록 달린 점들이 먼저 생각난다.




결혼을 하기 전 어느 여름 날 저녁이었다. 여름마다 땀띠로 고생하시던 아버지가 씼고 나오셔선 등에 연고를 발라달라고 하셨다. 옷을 올리고 아버지 등에 약을 발라드리다가 그때 할아버지 이마 위에 있던 것과 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울퉁불퉁한 살덩어리를 발견했다.


“세상에 아빠, 이거  뭐에요? 혹이야? ”


“아녀, 그거 점이여. 예전에 너이 할아버지한테도 있었잖아.”


“점도 유전이라더니 할아버지랑 똑같은 점이 아빠한데있었네, 신기해라.”


웃으며 약을 마저 발라드릴때는 미처 생각못했다. 나 역시 할아버지와 아빠처럼 튀어나온 짙은 색의 점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게도 아기 손톱크기로 동그란 덩어리가 오른쪽 어깨 뒤쪽에 있다. 결혼 하고 남편이 말해줘서 알았다. 더 신기한건 바로 밑의 여동생 등에도 같은 형태의 점이 있다는거다. 동생의 점은 함께 목욕하면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어릴 때는 작았던 점이 점점 커져서 지금은 기억 속의 할아버지 점과 비슷한 크기가 되었다. 아무래도 어릴 때 주워왔다고 여동생을 놀린 것은 심각한 오류임에 분명하다. 이렇게 분명한 증거가 있으니 말이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 깨끗한 아이의 온 몸을 보며 나중에 나처럼 점이 생길까 궁금해 했었다. 할아버지, 아빠를 거쳐 내게도 생긴 바로 그 점이 내 아이가 어른이 되면 몸 어딘가에 생겨날까? 아직은 여린 몸이라 내 것과 같은 점은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아이 몸에도 점이 날개처럼 돋아나날거라 생각한다. 내 아이라고 도장 꾹 찍어놓은 것 같은 점이. 그러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아이도 어릴 때 엄마 점을 만졌던 기억을 떠올리며 신기해할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아침으로 먹는 시리얼이 불편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