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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안 Sep 17. 2021

알고 가면 좋은 어학연수


“Yes, Thank you!”

 뉴질랜드에 처음 왔을 때 할 줄 아는 유일한 영어였다. 예쓰, 땡큐! 이 두 단어만 갖고 영어권 나라에 일 년이나 지낼 생각을 하다니 과거의 나는 꽤 대담했다. 뉴질랜드 공항에 도착하기만 하면 지금과는 180도 다를 새 삶이 펼쳐지리라 확신의 자신감이 있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일도 없던 시절, 밋밋하기만 하던 일상을 선명하게 만들어준 건 다름 아닌 국가라니. 뉴질랜드를 선망하는 마음은 눈덩이 불어나듯 순식간에 커지며 뉴질랜드에 오기까지 이 년 남짓 걸렸다. 일 년 동안 일을 할 수 있는 비자인 워킹 홀리데이를 통해 손꼽아 기다리던 뉴질랜드의 대도시인 오클랜드 공항에 내렸다. 한국과는 반대로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던 여름, 뉴질랜드에 도착한 1월 2일의 감격스러움을 차마 잃을 수 없어서 자주 가는 사이트에 0102로 비밀번호를 변경하기까지 했다.



워킹 홀리데이였지만 워킹(working)의 의미는 홀랑 지운 채 홀리데이(holiday)만 누려보려던 마음에 노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거기까지 간 김에 영어 공부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엄마는 어학연수 비용까지 대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건 몰라도 어학연수 제공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은 감히 거절할 수 없었다. 다른 계획들은 냅다 던져주고 가까운 곳으로 알아보다가 결국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어학원을 등록하게 되었다. 뉴질랜드에 꽂혀 객관적으로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없던 딸에게 더 넓은 길을 제공해주고 싶었던 엄마의 선견지명이었다. 세 달에 삼백만 원이 훌쩍 넘는 학비는 내 돈이었다면 절대로 등록하지 않았을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풍족한 여행이나 떠났을 게 뻔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자식에게 또 한 번의 학비를 마련해주신 부모님에게 따로 감사의 표현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아침에 시작되는 수업 시간에 잠이 쏟아지거나 지루함에 눈꺼풀이 닫히기라도 할 때면 한 달에 백만 원이 넘는 금액을 떠올리며 일분일초라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퍼뜩 차렸다.

 


수업에 참여하기 앞서 수준에 맞는 반에 들어가기 위해 테스트를 봐야 했다. 시험지를 받고 문제를 풀기는커녕 학창 시절 반복적으로 봐온 몇 가지 단어를 알아보기만 할 뿐이었다. 가장 낮은 단계의 반으로 배정되는 당연한 결과를 받았다. 그 반에는 나를 제외한 한국인은 한 명 있었고 중동에서 온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잠깐 인사를 나눈 친구들을 비롯한 많은 한국인 모두 나보다 높은 반에 있었다.


 

무의 상태에서 시작한 영어는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만드는 일과 같았다. 허허벌판 모래사장에 아무렇게나 모래를 잔뜩 긁어모으면 얼핏 형태가 보이는 것처럼 영어 공부도 하면 할수록 성을 쌓아 올리는 기분이 든다. 어제 만든 모래성은 오늘 가서 확인하지 않으면 파도에 휩쓸려가거나 누군가에 의해서 금방 훼손이 된다. 마찬가지로 영어도 하루라도 손을 놓으면 어제 공부한 시간은 마치 꿈속에서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하얗게 잊혀진다. 작은 디테일까지 살려 마침내 완성된 모래성은 한 번 완성했다고 평생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지 않는다. 만들고 부서지고 다시 만들고 부서지고 또다시 만들기를 반복하는 일이다. 어제 배운 내용이 오늘 생각나지 않을 때마다 무너진 모래성을 떠올리며 같은 페이지로 돌아가 다시 쌓기를 수 차례 반복했다. 실력 향상은 미미했지만 열중하는 모습에 자아도취하며 꾸준히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영어를 몰라서 당혹스러웠던 일이 비일비재했다. 실제로 당황스러웠던 사람은 내가 아닌 상대방이었을 것이다. 당장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어학원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와 같이 점심을 사먹으러 걷고 있는데 자꾸만 케첩을 말했다. 케첩이라니? 너무나 뜬금없는 단어에 도통 이해할 수 없어서 몇 번이고 물었지만 다시 돌아오는 대답은 오직 “케첩”이었다. ‘점심 메뉴에 케첩을 뿌리라는 건가? 케첩 좋아하냐는 건가?’ 속으로 오만가지 추측을 해봤지만 친구가 원하는 대답은 끝내 해주지 못했다. 결국 뒤에서 따라오던 영어를 잘하는 무리에 속한 한국인 친구에게 요청을 했다. 문제의 케첩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 답답함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친구가 앵무새처럼 반복한 말은 케첩이 아니라 ‘get job’이었다. ‘일자리를 찾다/얻다.’라는 의미인 get job을 끝까지 케첩으로 알아듣고 “난 마요네즈는 싫어하지만 케첩은 좋아해”라고 대답하는 나를 보며 그 친구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새삼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꿋꿋하게 케첩을 말해준 친구에게 고마워진다. 나중에 이 친구는”너도 곧 높은 반으로 올라가게 될 거야”.라고 상냥한 미소로 말을 하며 어학원을 졸업했다. 두 달 동안 다른 친구들이 하나둘씩 높은 반으로 이동할 때 여전히 꼴찌 반에 있던 내게 자격지심을 들게 했다.


 한 번도 수업을 빠지지 않고 출석하며 도서관을 제 집처럼 하고 다녔는데도 반 이동을 할 만큼의 실력은 발휘하지 못했다. 어학원 마지막 달에 한 단계 높은 반으로 이동하기는 했지만 선생님만 바뀔 뿐 한 단계 정도로 배우는 내용의 양질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요즘은 인터넷에 무료 강의나 영상이 널려서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면 어학원에서 배우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충분히 공부할 수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하면, 스무 살이 넘어서 어학연수를 통해 급격한 영어 실력 상승을 기대하는 건 어렵다. 내가 어학연수를 통해 얻은 건 영어보다 값진 기회에 가까웠다. 피크닉, 체험 활동을 가거나 파티에 참석하면서 만난 다수의 사람들과의 인연을 통해 즐거움과 새로움을 동시에 얻었다. 어학연수를 공부에 맹목적인 목표를 두기보다 여기서 제공하는 여러 기회를 누리는 방향으로 전향하는 것도 괜찮다. 어학원에서 본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대게 한국에서부터 부지런히 공부를 해오던 경우가 많았다. 무지의 상태로 어학원을 등록하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다만, 경험이 아닌 영어 향상을 목표로 한다면, 0이 아닌 적어도 30의 실력을 갖고 가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백지상태에서 하나씩 만들어 가는 첫 단계가 가장 공부하기 즐겁고 쉬운 때다. 그 부분을 오히려 한국에서 채워온 뒤, 공부에 권태나 한계를 느낄 때, 여유가 된다면 어학연수를 가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나는 그러지 못했기에 시간을 되돌려 어학연수의 기회가 온다면 비행기 타기 전 날까지 기필코 영단어장과 문법책 한 권은 끝내고 싶다. 한국인들은 문법 시험에서 기가 막히게 상위권을 차지하지만 말하기 영역에서는 가장 조용한 그룹이 된다. 어차피 어학원에 가면 외국인 선생님과 다국적 친구들과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문법만이라도 안정적이라면 적응하는데 비교적 수월해진다.


'시작하기 전에 준비하기'. 비단 어학연수만이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준비는 하면 할수록 도움이 되어준다. 간혹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준비’는 성취에 필요한 단계다. 철두철미 할수록 좋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되려 압박감이나 스트레스는 받지 않기를 조심스럽게 권한다. 애써 찾은 좋아하는 일이 잘못 몰두되는 바람에 즐겁지 아니한 일로 변질되면 얼마나 억울한지 모른다. 좋아하는 만큼 충실하게 준비해보자. 기대보다 파란만장한 즐거울 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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