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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m Aug 30. 2023

인스턴트의 침공

집밥 일기

편의점에서 사 오거나 배송받은 밀키트는 조리법을 숙지하고 포장을 뜯어낸 후 전자레인지나 가스레인지에 간편하게 데워먹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다듬고 헹구고 썰어 새로운 양념까지 더하려고 인스턴트를 선택하는 일은 결코 흔하지 않다.

나를 제외하고는.




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

다른 집들은 어떻게 끼니를 때웠을까.

배달음식이나 외식은 바닥을 드러내는 한계가 있고, 집밥을 먹고살아야 하는 처지는 같았을 텐데 불 앞에서 조리를 한다는 자체가 매우 부담스러운 환경이었다.





인스턴트 먹거리를 선택했다.

그리고 조리를 했다.


명문대 졸업 후 치열한 취업 관문을 뚫고 자랑스럽게 입사한 우수 인재들이 천지삐까리인 대기업에서 오랜 연구 끝에 개발한 과학기술의 결과물로 하나의 제품을 출시하기까지는 결코 허투루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먹거리를 믿고 구매한다.

짠맛이 우월하고 인공적인 맛이 여지없이 드러나지만 소비와 입맛을 유혹하기에는 완벽하다.





라멘이나 메밀국수를 먹더라도 면을 삶아 육수를 붓는 정도에서 밥상에 올리고 싶지는 않다.

살림을 하는 가정이라면 냉장고에 적당한 식재료가 그래도 몇 가지는 있을 테고 조금만 움직이면 외식메뉴 부럽지 않은 최상의 맛이 절로 나온다.


송송 썰어 넣은 쪽파나 부추는 건강한 맛을 끌어내고 곁들인 고기 몇 점은 양을 보탠다. 메밀소바에 갈아 넣은 무는 육수가 달라지는 변화가 있고 삶은 계란은 화룡점정으로 마무리된다.




닭꼬치, 닭고기 완자라고 불리는 츠쿠네는 꼬치가 있어 아이들 간식이나 캠핑요리로 유명하다.

냉동밥을 데워 접시에 담고 분말 카레를 물만 넣고 뜨겁게 끓여 밥 위에 붓는다.

노른자가 터지도록 계란 프라이를 하고 그 옆에 에어프라이어에 뜨겁게 구운 츠쿠네를 올리면 매우 이색적인 한 끼가 된다.

누군가는 저 꼬치가 밥과 함께 있는 것이 거슬릴 수 있겠으나 나는 지금 오사카 어디쯤, 베트남 어디쯤으로 생각하면 즐거울 일이다.






어묵 우동 한 그릇은 실내 온도가 33℃ 까지 치솟는 한 여름의 절정에도 간절할 때가 있다.

유해 성분이 묻어 있을 것 같은 우동 면은 온수에 한번 헹궈놓고 팔팔 끓는 물에는 수프와 어묵을 넣는다.

면과 함께 또 한 번 끓이다가 수란에 가깝도록 달걀을 올리고 대파를 송송 썰어 푸짐하게 곁들인다.

배어 나오는 파의 풍미로 짠맛은 줄고 국물은 깔끔하다.


장인의 수제 우동은 바로 우리 집 식탁에 있었다.






냉동 김치만두 한 봉지도 전자레인지에 휙 돌려 바로 먹는 맛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나무 찜기에 쪄서 만두피가 터지도록 먹는 그 맛이 고스란히 나의 몫이다.

비타민 몇 알을 털어 넣고도 버틸 힘이 없는 날을 제외하고는 내 밥상에 늘 진심이다.

때로는 직접 무치고 버무린 집밥도 먹고, 때로는 밀키트에 식재료를 추가해 간편하면서도 좀 더 맛있게 먹는다.


심하다 싶을 정도의 과잉 포장으로 가격만 올라가는 제품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지만 지금의 시대에 우리에게는 분명 필요한 제품군이다.


가끔은 이러한 인스턴트의 침공으로 나는 조금 편해지는 중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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