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일기
지금까지 비빔밥은 절친만의 음식인 줄 알았다.
24년 전 12월 평범한 나의 신혼 생활은 시작되었다.
추운 겨울이었음에도 따뜻한 휴양지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덕분인지 신혼부부만의 붙어있음 때문인지 좌우지간 춥지 않았다. (지금은 트윈베드로 알아서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맞벌이로 시작한 그 시절 우리의 집밥은 특별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늘 냉장고의 2/3가 김치로 채워지도록 원하지 않는 어머님의 김치는 정기배송 되었다.
김치찌개, 김치볶음, 김치조림 어떻게 먹어도 다 용서되는 시간이었다.
반찬 투정이라고는 없는 절친 또한 세트로 올라오는 콩자반에 멸치볶음, 연근조림이 진지하게 물렸던지 양푼을 꺼내 뜨거운 밥을 담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듬뿍 넣었다. 세상 복스럽게 비비기 시작하는데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꽤나 많은 양의 밥이었는데도 한입 한입 정말 맛있게 싹 비웠다.
고추장, 참기름, 밥 (고. 참. 밥)만으로 이렇게 경이롭게 먹는 사람이 있다니 이런 레시피가 있었다니 마냥 신기했다.
'방금 출발했고 7시에 도착합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빼놓지 않는 절친의 퇴근 문자 되시겠다.
나 또한 보답이라도 하듯 국이나 찌개를 끓이던 고기를 굽던 어묵을 볶고 오이를 무치던 고생하고 맞는 우리의 저녁에 갓 지은 무언가는 꼭 내놓는 밥상을 준비했다.
그러나 가끔은 외식이나 배달 음식들로 본의 아니게 여러 날 남는 반찬들이 생겼다.
처음 맛이 아니다 보니 외면으로 시작해서 방치에 방치를 하다 결국은 변질되어 버리기도 하는 날이 있었다.
아까운 것은 물론이고 나의 수고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에 더 큰 허탈함이 있었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 밥상은 늘 날것이었다.
돼지 등뼈는 핏물을 빼고 한우 사골처럼 고아 소금 간을 해서 밥을 말아먹었고 김치는 무조건 바로 담아 그때그때 먹었다. 심지어 김치찌개도 바로 담근 김치로 끓이는 방식이었다. 돼지고기까지 듬성듬성 썰어서.
꼴뚜기가 나오는 계절에는 깨끗하게 손질해서 초장에 찍어 먹고 홍어, 병어 등은 무조건 막 썰어 회로 먹었다.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 중에 진한 양념이라고는 빨간 게장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 식성으로 길들여진 나에게 식재료나 양념, 소스 등을 섞어 비비거나 볶는 메뉴는 익숙하지 않은 게 당연하기도 하다.
소울푸드라도 되는 냥 주기적으로 고. 참. 밥을 먹는 절친.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익은 김치를 잘게 잘라 넣기 시작하더니 냉장고에 남은 반찬들을 하나둘씩 보태서 비비기 시작했다.
잔반도 처리하고 맛도 더 있다며 은근히 즐겼다.
나는 보는 것만으로도 먹는 절친보다 더 흐뭇했다.
일부러 알록달록하게 나물반찬을 넉넉하게 해서 비빔밥을 즐기게도 했다. 꼭 나물 반찬이 아니더라도 비빔밥에 넣을 수 없는 반찬들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매번 한 숟가락 이상은 먹지 않았다.
새벽 6시 기상.
삶은 계란과 사과를 잘라 절친의 아침메뉴로 식탁에 놓는다.
출근도 없는 상팔자. 왜 그 시간에 배가 고픈지 정수물 한 컵을 마시고 사과 반쪽으로 시간을 번다.
아무도 없는 오전 11시 나의 밥상은 그때부터 시작되는데 세. 상. 에. 여러 끼니 비빔밥이다.
하루 전날 당근과 시금치에 계란만 넣고 김밥을 말았다. 대여섯 줄 싸고 남은 재료에 갓 무친 밥반찬 콩나물이 있었다.
1초의 고민도 없이 계란프라이를 했고 고추장과 참기름 꺼내 예쁜 밥상을 차렸다.
성실하게 일 잘하고 돌아온 절친에게 남은 반찬을 먹이고 싶지 않은 나의 갸륵한 희생정신이 빚은 결과라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절친은 나에게 치킨을 배웠고 나는 절친에게 비빔밥을 배운 셈이다.
이 무슨 '나에게 넌 너에게 난'이란 말인가.
좌우지간 오늘의 집밥 일기는 백수 필수. 상팔자 집밥 메뉴. 비빔밥 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