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속으로 돌아가!>
“아~ 하늘이랑 인생을 바꾸고 싶다!”
동생이 태어난 이후 줄곧 동생에 대한 질투 섞인 말들을 쏟아내는 우리 집 첫째 단비. 어떤 날엔 엄마는 만날 하늘이랑만 놀아 준다며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또 다른 날엔 엄마를 차지하기 위해 돌쟁이 동생과 쟁탈전을 벌이기도 한다. 두 주에 한번 꼴로는 “엄마는 하늘이만 봐주니까 나도 할 거 하기 싫어.”라며 으름장을 놓고선 학교 숙제며 악기 연습이며 다 팽개치고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워 있기만 해서 애간장을 태운다. 어제는 양치질을 하면서 혀 짧은 소리로 “난 집을 나갈 거야. 그래서 다른 엄마를 찾을 거야.”라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는데 참 우습기도 하면서 뼈를 맞는 기분이랄까. 그래, 5년 넘게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기분일 테지. 그 마음은 십분 이해가 가면서도 단비의 기가 막힌 언행을 보고 들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저절로 나오곤 한다.
물론 누나로서 동생을 참 예뻐하긴 한다. 목욕하고 나온 동생을 보며 너무 귀엽다고 로션을 발라주기도 하고, 내가 설거지를 할 때 잠깐 맡겨 놓으면 손뼉 치기를 하면서 잘 놀아주기도 한다. 선풍기를 향해 돌진하는 동생을 얼른 안아 올리는 것도 단비 몫이다. 동생을 귀여워해 주고 엄마의 기저귀 심부름도 곧잘 해주니 참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도 크다.
그럼에도 일곱 살은 아직 영락없는 어린아이인 것 같다.
“엄마, 나도 하늘이처럼 아가라고 불러줘.”
이 말을 하는 단비의 눈망울이 어찌나 애처로운지 속으로 울컥했다. 아, 나의 첫사랑 단비. 이제껏 우리의 소중한 아가는 너 하나뿐이었는데. 이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나눠 가져야 하니 그 마음이 얼마나 서럽고 속상할까.
엄마 아빠가 아가라고 부를 때마다 기분이 참 좋았던 <알 속으로 돌아가!>의 콩콩이도 새로운 아가가 생겼다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한다. 아가? 아가는 나인데… 자신을 더 이상 아가라고 부르지 않는 엄마 아빠를 보며 콩콩이는 생각한다. ‘쳇, 내가 아가인데 왜 자꾸 저 녀석에게 아가라고 하는 거야?’
동생이 생긴 아이의 마음을 이렇게 잘 공감하고 다독여주는 책이 또 있을까. <알 속으로 돌아가!>는 작년 출간 당시 ‘그림책숲’에서 경혜원 작가의 공룡 싸인본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주문한 책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공룡과 아이의 이름을 남겨주면 작가가 직접 싸인과 함께 공룡을 그려준다는 거였다. 단비 이름과 함께 브라키오사우루스를 좋아한다고 남겼더니 정말 속표지에 ‘단비 안녕! 우리같이 놀자!’라는 문구와 함께 귀여운 공룡 그림과 작가의 싸인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쓰여 있는 걸 본 단비는 자기를 위한 작가의 선물이라며 뛸 듯이 기뻐했다. 그리고 책을 읽어줬을 때도 무척 재미있다며 몇 번이고 ‘또 읽어줘!’를 외쳤는지 모른다.
“알껍데기 잘 보관해야 해. 동생과 함께 있다 보면 그 녀석을 알 속으로 도로 넣어 버리고 싶을 때가 생기거든. 난 그것도 모르고 알껍데기를 내버려 뒀다가 그만…”
친구의 조언을 잘 기억하고 있던 콩콩이는 동생 콩이가 알껍데기를 깨고 태어나자 엄마, 아빠가 동생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알껍데기를 몰래 숨긴다. 동생이 생기고 완전히 변한 현실을 느끼자 동생을 알 속으로 다시 돌려보내리라 마음먹는 콩콩이. 하지만 숨겨 놓은 알껍데기는 산산조각이 나 있고 콩콩이는 이제 어쩌나 마음이 쿵.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콩콩이가 아니다. 다른 알껍데기를 찾아다니기 시작하지만 좀처럼 적당한 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딱 좋은 걸 발견했으니 바로 다름 아닌 수박! 콩콩이는 단단한 껍질에 구멍을 내고 달콤한 속을 열심히 파먹는다. 그것도 동생 콩이와 함께 말이다. 다 파먹고 나자 배가 불러 깜빡 잠이 든 콩콩이. 콩이가 ‘형아’ 부르는 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뜬다. 동생이 수박 껍질에 머리가 끼인 채 발버둥 치며 울고 있었던 것이다. 꼬리를 힘껏 잡아당겨도 꼼짝도 않고, 콩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만 간다. 어떻게든 동생을 꺼내야겠다는 일념에 다다다다 달려가서 수박 껍질에 퍽 박치기를 한 콩콩이는 마침내 껍질을 산산조각 내고 동생을 구해낸다. 그날 이후 둘은 박치기를 하며 사이좋게 지낸다. 물론 매일 싸우기도 하면서. 책의 뒷면지에는 콩콩이와 콩이 형제가 사실은 박치기 대장 파키케팔로사우루스라는 소개가 나와있는데 머리뼈가 20~30cm 정도로 두꺼운 이들에게 머리로 수박 깨기 정도는 식은 죽 먹기란다. (ㅋㅋ)
단비 역시 콩콩이처럼 누나가 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동생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엄마! 하늘이 태어나면 하늘이만 본다고 나 안 봐주면 안 돼!” 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더니 동생을 보고 나서는 레퍼토리가 바뀌었다.
“하늘이가 엄마 배 속으로 다시 돌아갔으면 좋겠어!”
임신 때부터 주변에서 다섯 살 정도 터울이 지면 동생에 대한 질투가 없고 예뻐해 주고 잘 봐주기만 한다던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나는 처음에 단비의 말을 듣고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작은 삼촌과 여섯 살 터울의 친정 엄마는 막내 동생을 만날 업어주고 작은 엄마처럼 키웠단 소리를 내내 하셨다. 단비도 그럴 거라면서. 하지만 웬걸. 우리 집에서 그런 일은 영영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연년생 동생이 있는 장녀로 살아온 나는 단비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참 복잡했다. 두 살에 됐든 여섯 살에 됐든 어쨌든 첫째가 되는 건 아이의 삶에서 크나큰 시련임에는 틀림없으리라. 나 혼자 모든 걸 누리던 시절이 끝나고 이제 모든 걸 나눠 가져야 한다는 건 참 억울한 일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어린 나이에 언니가 되어 혼자였던 시기가 너무 짧아서 그랬는지 억울함을 미처 느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뭐든 동생에게 양보하며 살았던 걸 보면.
단비는 5년 반이라는 긴 시간을 외동딸로 살아온 아이였기에 엄마 아빠의 사랑이 자기에게 온전히 부어지지 못하는 현실이 참 힘들었을 테다. 그런 단비에게 늘 이야기했다. 너는 참 오랫동안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니 얼마나 복 받은 거냐고. 엄마는 첫 번째 생일을 맞기도 전에 동생이 생겼는데. 그 정도 혼자 누렸으면 이제는 그만 좀 나눠 가져도 괜찮지 않냐고. 하늘이는 태어날 때부터 나눠진 사랑을 받으니 불쌍하지 않냐고. 하지만 아무리 이야기를 한들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럼 애당초 하늘이가 없었으면 되지 않냐고 할 땐 정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또 단비 앞에선 하늘이를 마음껏 예뻐해 주지도 못했다. 자신도 하늘이에게 하듯이 똑같은 말투로 해달라고 하니 나는 오히려 하늘이를 일곱 살 아이 대하듯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단비에겐 도저히 아기 말투가 나오지를 않으니 말이다.
가끔씩 단비에게 서운한 마음이 담긴 눈빛이 스칠 때면 나는 그 마음을 잘 달래줘서 생채기가 안 나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면서도 한 편으론 과연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일까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크고 나면 동생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스스로 깨닫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어릴 땐 만날 티격태격했어도 이제는 결혼 선배, 육아 선배로 동생을 언니처럼 의지할 때가 많은 나를 보더라도 결국 형제애는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어서야 두터워지는 게 아닐는지. 아이 때는 부모의 사랑을 나눠 가져야 할 경쟁자일 뿐이지만 커서는 누구보다 든든한 가족이고, 부모님의 자리를 대신해 줄 수도 있는 존재가 되니 말이다.
그러니 마음을 편히 먹고 시간이 흐르길 기다릴 수밖에 없으리라. 단비가 커서 퇴근길 어두운 밤거리도 마중 나가는 든든한 남동생이 있단 걸 뿌듯해하는 날이 오기만을. 그땐 수박 껍질 아니라 무쇠솥 안에 갇혀 있다 하더라도 다다다다 박치기를 해서 구해낼 만큼 동생을 사랑하는 누나가 되어 있기를. 그럴 수 있겠지, 우리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