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으세요?"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젊은 남자분이 내게 말을 건넨다.
'꿈이야 있기는 있지요. 그렇지만 지금 당신에게 할 이야기는 아니지요!' 속으로 말하며, 웃으며 가만히 쳐다봤다.
그는 천천히 본인이 폐결핵을 기적적으로 치유받은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신 분이 예수님 이 시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가족을 갖고 싶어서 본인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하면서 자신의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늘 마음에 선교에 대한 꿈이 있었다.
내가 자격이 될까?
나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내심 두려움이 가득하지만 늘 나의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선교라는 단어였다.
마침 초등학교 친구가 내게 미국 선교사들이 와서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알려주어서 바쁜 일정이었지만 휴가를 내서 굳이 서울로 올라갔다. 일정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고속버스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던 내가 갑자기 전도를 당하는 상황이 되어 나도 어쩔 수 없이 말하게 되었다.
"저 예수님 믿어요! 그리고 꿈도 있어요."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는 조용히 이어졌고, 인생에 처음으로 고속버스에서 만난 남성에게 5시간이나 쉼 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정말 내 인생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었다. 잠시 쉬는 휴게실에서 맛난 햄버거와 오렌지 캔 주스를 사들고 들어와 내게 주었다. 나는 처음 옆자리의 남자분이 이렇게 먹을 것을 건네는 것이 사실 처음이기에
" 저는 감사합니다만 저는 괜찮아요."
" 아! 혹시 멀미하세요? 아니면 드셔도 됩니다. 독약 안 탔어요. 방금 사가지고 왔어요."
" 아 뭐 그런 건 아닌데.. 그럼 감사합니다."
사실 긴 시간 고속버스를 타고 가면서 휴게실도 옆자리 남자분이 하도 말을 시키고 또 왠지 나도 신경이 쓰여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도 먹지 않았기에 배가 고팠었다.
긴 시간의 여정에 심심하지 않게 대화를 나누며 밤늦게 부산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다음 날 병원에 출근을 하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 사이에 낮 익은 얼굴이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보호자인 줄 알고 상관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그 사람이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어머나! 어제 고속버스에서 내 옆자리에 앉았던 그 사람이네'
옆모습을 보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인지, 그 사람의 얼굴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었다
"이제 기억이 나세요? 어제 고속버스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입니다.
제가 맛있는 거 많이 사드렸으니 오늘은 제게 커피 한잔 사 주셔야죠!"
퇴근을 하고 그 사람이 먼저 가서 기다리는 남포동 커피숖으로 달려갔다.
처음 어떤 낯선 남자와 단둘이 커피를 마시는 것이 불편하고 두근 거리기도 했다.
그날 나는 맛있는 커피를 한잔 사주고 잠시 좋은 대화를 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이 일하는 동료 분이 꽃봉투를 들고 오시면서
"와우! 이렇게 큰 대병원에 이런 꽃봉투가 오기도 하는구나! 줄까 말까? 커피 하나 뽑아주면 줘야겠네"
" 천 선생! 솔직히 말해봐요. 도대체 조용한 척 한 사람이 부뚜막에 이런 식으로 먼저 올라가면 안 되지, 선배들 두고 뭐 합니까 정말"
" 와 이렇게 선전포고 당당하게 하는 꽃봉투 쓰신 분이 누구지? 와이구야..용감하데이!"
갑자기 내 방 앞에서 동료분들이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왜요? 내가 뭐요?"
어리둥절해하는 내 앞에 꽃봉투를 줬다 뺏었다를 하면서 커피를 뽑아내라고 해서 커피를 뽑아주기로 약속을 하고 일단 나는 받았다.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하... 그 사람이구나'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장거리 교제는 점점 길어지고 깊어졌다.
그사이에 우리는 장거리의 시간의 지루함 때문도 있지만 그 사람이 군대에 들어가면서 더 연락이 끊기기도 하고 점점 우리 둘이는 서로 다른 것 같다고 나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는 지루하고 본인의 현실이 너무 벅차서 누구를 교제할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헤어지자고 내게 전했다.
갑자기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 그날! 나에게는 큰 충격이 되었다. 헤어질 것 같다고 느꼈지만 아직 헤어질 준비가 될 만한 감정은 아니었기에 갑자기 싹둑 잘린 감정을 가지고 나는 몇 달 동안 가슴앓이를 했다.
그 시간을 통해 사람의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잠시 이 사람 때문에 흔들리고 멈췄던 나의 가야 하는 길에 더 속도를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그 사람과 주고받았던 모든 편지들을 아버지가 나뭇잎을 태우려고 불을 붙여 놓은 그 큰 통 안에 넣어버렸다. 아주 남김없이 활활 다 태워버렸다. 보고 계시던 아버지가
"혜경아 그걸 그렇게 굳이 태워 버려야 하니.. 아고 성질도... 괜찮겠어? 너는 마음이 잘 정리 됐니?"라고 물으시고 한참 동안이나 아버지와 마음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해 겨울에 다니던 병원을 퇴직하고 한 달 동안 모든 나의 것들을 정리하고 부모님과 가족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선교사 훈련을 받으러 올라갔다.
나는 선교사 합숙 훈련을 본격적으로 서울 부암동에서 열심히 받고 있었고 그 시간에 그 사람은 중위로 여수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머문 도시에서 선교 단체의 모임에서 한 여자 간사님이 간증을 하는데 나의 이야기를 그 모임에서 했었단다. 그것도 내가 곧 파키스탄으로 떠난다는 말까지.... 그는 그 간사님에게 나의 이름과 상황을 물어보고 내가 그때 만난 사람이라고 알게 되었고 그 간사님의 중간 역할로 우리는 다시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는 어느 날 비행기를 타고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공항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도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 갑자기 두근거리기도 한 마음으로 공항에 그를 만나러 갔다.
마침내 우리 둘은 얼굴을 마주 하고 일 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났다.
그는 겸연쩍어하면서 조심스레 말을 시작했다. 그는 정말 미안하다고 자신의 복잡했던 군대생활을 시작하는 과정의 어려움이 너무 커서 그랬던 것 같다고 혹시 지금 남자친구가 없으면 다시 만나 줄 수 있는지 간곡하게 물어보았다.
내 평생 만나 사귀었던 첫 만남이었기에 그랬는지 사실 나도 왠지 일 년 내내 그에 대한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일 년 전 만났을 때의 상황과 현재의 나의 상황은 상당히 바뀌어서 몇 달 뒤에 바로 선교지로 떠나야 하기에 지금 아무리 마음이 두근거려도 사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의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에 조금 과감하게 나는 그에게 말했다.
" 그럼 나를 따라올 수 있으시겠어요?"
"........."
" 저는 저랑 같이 이 길을 갈 수 없는 사람과 사귈 수 없어요"
" 아!......"
" 어디 가시는데요?"
" 아 모르셨군요? 제가 곧 파키스탄으로 떠납니다."
" 왜 가시는데요?"
" 선교를 하러 갑니다."
" 얼마나 가실 건데요?"
" 저는 평생 그렇게 살 겁니다."
" 제가 내려가서 기도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부대로 들어갔다. 그리고 3일 뒤에 전화가 왔다.
"혜경 씨 제가 당신이 가기로 한 그 길을 따라 같이 가겠습니다.
그럼 저와 결혼해 주실래요?"
그런데 한국의 문화가 남성을 따라가는 문화이기에, 여성이 선교사가 되고 남편이 여성을 따라간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고 더군다나 그는 현재 군대 장교로 복무 중이었기에 더 우리 주위의 많은 분들이 반대를 하였다.
그렇게 안타까움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선교단체 대표되시는 목사님이 우리 둘을 불러 아침에 간단히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셨다. 아마도 그분에게도 우리 소식이 들어갔고 어떤 지 알고 싶으셨던 모양이었다.
만나기 쉽지 않은 그분과 함께 하는 영광스러운 아침 식사시간에 목사님이 그 사람에게 물으셨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난 건가?"
"넵, 저희는 고속버스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아구야! 세상에 이렇게 만날 수도 있구나! 선교사가 훈련받다가 아니면 교회에서 짝을 만나야지 그래 고속버스에서 만나다니.... 그래 서로를 잘 모를 건데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나? 그리고 지금 자네가 만나는 이 자매가 어디를 가야 하는지는 아는가?"
"넵 잘 알고 있습니다."
"음 그렇다면 한 가지만 약속해 주게 자네가 결혼할 자매는 선교사로 훈련받았고 앞으로 해야 할 임무가 있네, 자네가 같이 가서 그 선교의 임무를 감당할 수 있겠나?"
"넵 결혼을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같이 선교사로서의 임무를 감당하고 살겠습니다."
"아이고 시원하네! 그럼 파키스탄 떠나기 전에 결혼하게나. 아고 참 그래 고속버스에서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다니 참 신기하구먼."
우리는 한 달 만에 결혼식을 하고 꿈만 같은 신혼의 시간을 보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 까지는 서울에서 훈련을 받고 남편은 육군 중위로 여수 부대에서 근무를 하기에 나는 금요일 밤에 모든 훈련이 마치면 서울에서 밤 기차를 타고 여수로 내려간다. 그 밤 기차를 타고 토요일 새벽에 내리면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따라 군대 근처에 있는 우리의 아주 작은 단칸방으로 간다.
토요일부터 주일 오후까지 우리 부부는 작은 곤로에 요리도 해서 먹고 그 작은 집에 군인 친구들도 초대해서 식사도 하고 꿈만 같은 행복을 누렸다. 그리고 중위의 아내로서 군대에 모임에도 참석하고, 장교부인들의 모임에도 참석하고, 군부대 안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군대의 모든 행사에 되도록이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참여하였다.
꿈만 같은 주말 신혼의 3개월을 마치고 드디어 떠나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정말 많이 아쉽고 더 같이 신혼을 보내지 못하고 군대에 혼자 남편을 두고 가는 것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나이 25세에 고속버스에서 만나 나이 60대가 넘어서까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동지가 되는 여정은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늘 우리 안에 남아 있는 감칠맛 나는 잠깐의 헤어짐에서 시작된 서로를 향한 그리움은
우리 사랑의 끈끈한 접착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