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나의 동역자!

임신 중독증

by 천혜경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누구나 살아왔던 고국의 따스함을 잊지 못하고 늘 그리워하는 것 같다.

입국할 때마다 공항에서 느껴지는 포근하고 특이한 나의 정서를 안정시키는 고향의 냄새는 내 코에서만 느껴지는 것일까? 아니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꽉 차 있는 내 뇌에서 느껴지는 걸까?




기내에서 15시간 내내 울다가 자고 하다 보니 얼굴과 두 다리가 퉁퉁 부었다. 그리고 배가 산만한 임신부가 파키스탄 옷인 샬와르까미즈를 입고 있는 것이 신기한지 이민국을 통과하고 짐을 찾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내내 많은 사람들이 흘긋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의 눈들이 무섭지 않았다.


여긴 내 나라 한국이니까….


드디어 짐을 찾아 문을 나서는 순간 내 부은 눈에는 가장 먼저 군복을 입은 남편이 보였다.

우리는 반갑게 다가섰지만 너무 쑥스러워 손을 겨우 잡고 남편은 눈물이 그렁그렁 한채 부지런히 내 짐을 들고 짐꾼처럼 빨리 앞서 걷는다.


'잘 지내셨어요?"

"응! 나는 잘 지냈소 당신은?"

"나도 뭐.. 열심히 잘살다가 왔지요"

"지금 몸은 많이 안 좋소"

"아니 뭐.. 임신중독증이라는데.. 병원 가봐야 지요...!"


그렇게 짧은 대화를 하며 우리 둘은 공항을 빠져나와 남편이 근무하고 있는 여수로 내려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조용히 오는 동안 우리의 서먹함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기차에서 드디어 꽉 손을 잡고 서로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며 울었다. 서로 눈물을 닦아 주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울었다.


반가웠다.

너무너무 기다렸던 시간이다.

하나님도 사랑했지만 내 가슴에 남편과 함께 한 공간이 참 컸다.


'누가 가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사랑하며 살고 싶어 달려간 선교의 길이었는데!

왜 이렇게 처음부터 모든 과정이 힘이 드는 걸까?'




아주 작은 공간의 우리 신혼집이 그대로 있었다. 서로 돌아누우면 꽉 차는 아주 작은 방, 벽에 옷걸이가 있어서 옷을 걸어 놓고 그 위에 보자기로 덮어 놨던 그대로…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작은 공간에 있는 작은 찬장 그리고 연탄을 쌓아 둔 작은 부엌, 신발 두 개 벗어 놓으면 꽉 차는 방문 앞의 모습들이 다 변하지 않고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깔끔한 남편의 성격대로 모든 것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우리 둘은 서로 가슴에 쌓아 둔 이야기로 밤을 새웠다. 지금까지 살아낸 서로 에게 감사하고, 파키스탄의 모든 위험한 가운데서도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바로 다음날 산부인과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일단 남편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이미 내게 깊은 안정감을 주었기에 모든 것이 행복했다.


나는 한국 임신부들이 입는 예쁜 옷을 입고 싶었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남편이 시장에서 옷을 몇 벌 사가지고 왔다. 이쁜 임신복을 입고 입덧도 지났지만 맛있는 거 매일 하나씩 사 먹으며 그렇게 행복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조산실에서 8시간이나 진통을 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임신중독증세 때문에 심장박동이 너무 빨리 뛴다고 급히 응급으로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면서 남편에게 사인을 하라고 하였다.


남편은 나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였는지 아니면 너무 무서웠는지, 자신이 금식기도를 하고 올 테니 하루만 기다려 달라고 하는 것이다. 옆에 계신 아버지께서 “자네 어서 사인하고 가게 급히 수술 들어가야 한다는데, 애가 위험하다고 하잖나 어서 사인하게” 그래서 남편은 마지못해 사인을 하고 비장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당신이 나오면 같이 밥 먹을 거야 잘 마치고 나와야 해요 내가 기도할게요 힘내소”




배가 불러 혼자 길을 다닐 때 따라다니며 '찌니 찌니' 라며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찌니라는 용어는 중국인이라는 뜻인데, 의미는 눈이 찢어진 사람 이란 뜻이다.


그리고 나와 같이 비슷한 시기에 임신한 미국 여자 선교사님과 우편물을 확인하러 가고 오는 길에 장난기 있는 아이들이 뒤에서 던지는 돌에 여러 번 맞아 피해서 둘이 배를 잡고 도망치기도 했다.


매일 포장되지 않아 먼지 나는 길을 펄펄 날면서 달리는 릭샤 안에서 배를 꽉 안고 있어야 했다.


어느 날은 시장에서 두 남자에게 잡혀 부서진 나무 궤짝들이 가득 찬 창고 안으로 끌려갔다가 내가 임신한 것을 알고 그들이 뭐라고 알지 못하는 말로 서로 다투면서 한 사람이 갑자기 나를 풀어주었다.


파키스탄 은 한국인 여자 혼자 살면서 감당하기는 상당히 버거운 나라였다.



임신 6주 때부터 아픈 엄마를 따라 선교지에 가 주었고, 외로웠을 엄마의 첫걸음에 벗이 되어 주었고, 지금 까지 그 모든 긴장을 이겨낸 장한 나의 딸이 지금 내 품에서 열심히 '응애응애' 울고 있었다.



딸아 잘 견디고 이렇게 건강하게 태어나 줘서 고마워!

네가 있어서 엄마는 살아낼 수 있었단다!


딸은 엄마의 말을 들었는지 아니면 열심히 살아낸 것에 본인도 감격했는지 엄마보다 큰소리로 우렁차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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