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에 도착해서 우리들은 작은 도시에 가게 되었는데, 지은 지 오래된 건물들이 많았고, 어느 작은 집들은 창문이 없이 큰 천으로 가려 놓은 집들이 많았다.
그리고 아주 옛날부터 선교사님들이 그 마을에 와서 살았던 그 집이 낡았지만 그대로 있었다.
여권도 만들기 어려웠던 그 옛날에 어떻게 이곳까지 선교사님들이 섬기러 오셨을까 생각하니 너무 존경스러웠다.
제법 작은 언덕이 있는 곳에 우리들의 숙소가 있어서 그 숙소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데, 길 건너에 멋지게 지어진 교회가 있었다.
우리의 시작에 문을 열어준 멋진 목사님 부부와 세 남매가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나는 그 집에서 "짜르빠이" 끈으로 엮어 만든 침대가 여러 개 있는 작은 방에 머물렀다. 끈으로 엮어서 그런지 조금만 움직여도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밤새 서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꼼짝도 안 하고 밤을 설쳤다. 그곳에서 며칠을 같이 머물고 나 혼자 살 수 있는 방을 배정받았다.
그 방은 깔끔한 작은 방이었다.
한쪽 구석에 있는 문을 열어보니 좌변기가 얌전히 있고 바로 조금 떨어져 세면대와 거울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화장실에 부엌도 같이 만들었다. 작은 곤로를 하나 구입해서 세면대 밑에 놓고 나니 이제 완전한 나의 스위트 홈이 되었다.
화장실과 부엌이 같이 있다는 것이 굉장히 상징적인 나의 집이었다.
인간의 모든 시작과 끝을 깊이 느끼게 하는 소중한 나의 공간이었다.
그 작은 방에서 내 뱃속에서 자라는 아기와 같이 선교를 시작했다. 선교사님들과 같이 모여 기도하며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현지 교회를 참석하며 못하는 언어를 꾸역꾸역 머리에 넣고 또 입에 넣었다.
다행히 입덧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구역질이 날 때마다 석류와 레몬을 씹어 먹으며 겨우 겨우 참았다, 하나도 입맛에 맞지 않는 주어진 모든 음식들을 소화하기 위해 열심히 꿀꺽꿀꺽 삼켰다.
하얗게 굳은 쇼트닝 기름으로 볶은밥에 마살라 향료를 넣고 기름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고기와 삶아 놓은 야채들조차 너무 화려한 음식이었지만 입덧으로 인해 내겐 그리 맛난 것들은 아니었다.
어느 날 라호르에 모임을 하고 오면서 들린 작은 가게에서 만난 쵸이스 커피와 깡통케이스에 담긴 쵸코렛은 보는 것만으로도 말라비틀어진 세포들을 달콤하게 깨워 주었다. 나도 모르는 게 내 손이 지갑의 모든 재정을 꺼내 그 비싼 가격을 기쁘게 지불해 버렸다.
나는 하나님이 가라고 한 이 나라를 섬기려고 왔는데….
미처 내 위와 입맛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나 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배가 불러오는데 내 몸이 심하게 붓기 시작을 했다.
임신중독증의 증상들인 것 같다고 모두들 걱정하셨다. 나는 떠나기 전에 결혼하고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아팠었고 이제는 임신 중독증까지…
팀 모든 분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가장 미안했다.
같이 사역하는 두 분의 선교사님 사모님들 중에 임신하신 분들이 계셨는데 그분들은 어찌나 씩씩하신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이 쉽지 않은지!
남편도 없이 혼자 온 임신한 여자 선교사! 누가 봐도 신기한 상황이었고, 또한 도울 사람도 없이 혼자 아이를 낳고 파키스탄에서 양육하며 같이 선교병원에서 섬기는 것이 가능한지도 많은 분들이 질문을 했었다.
나는 담대히 말했다.
저는 할 수 있어요! 아니하고 싶어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강하게 하나님이 훈련시키셨어요! 라고 늘 웃으며 답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구석진 마을에 홍콩 산부인과 의사부부가 의료봉사를 오셨는데, 잠시 만나서 못하는 영어로 이야기하며 대화를 하고 나의 상황을 나누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긴 시간 팩스를 주고받으며 팀 안에서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 아기를 낳고 남편의 제대하는 시간을 맞추어 같이 들어오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드디어 임신 8개월 2주 인 위험 한 시간에 한국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 티켓팅을 하는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나의 임신기간이 항공사 규정인 임신 8개월이 넘었기 때문에 비행기 태울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와락 눈물이 났다. 그동안 누르며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또 나의 길이 막히는구나!
나는 떠듬떠듬 배운 우르두어로 가족과 남편이 현재 파키스탄에 없고 그리고 지금 임신 중독증이라 아기를 혼자 낳을 수 없어서 돌아간다고 도와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울면서 열심히 말하고 있는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던 그 항공사 매니저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언제 그렇게 우르두어를 배웠나요?
재정을 조금 더 내시면 가실 수 있는 좌석으로 업그레이드를 해 드릴게요. 그리고 여기 사인하세요.
울지 마세요! 안내드릴게요. 손님은 일등석 1번 자리를 드릴게요. 승무원이 옆에 앉을 겁니다. 이제 승무원의 도움을 받고 안전하게 남편이 있는 한국에 갈 수 있어요."
방금 아이처럼 울며 어깨를 들썩이고 콧물 줄줄 흘리며 이야기한 내가 너무 부끄러워지게 그 매니저는 나를 아이를 대하듯 위로하면서 친절하게 다음 절차를 밟게 해 주었다.
내 평생 처음으로 1등석 1번 자리 티켓을 받았다.
얼마나 감사한지 나는 그분에게 "슈크리야"를 계속 인사하며 무사히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안에서 기쁨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막혀서 나를 절망가운데 끌고 가더니 갑자기
드라마틱 하게 문들이 활짝 열리는 것이 너무 놀라운 충격이었다.
파키스탄 올 때 비행기 안에서 아팠던 추억 과는 정 반대의 상황을 만나니그 두려움의 기억이 다 치유되는 것 같았다.
몇 개월이었지만 소화하기 쉽지 않은 시간들을 만났었고, 그때마다 두근두근 절망적인 과정들을 있는 힘을 다해 참아내었던 내 심장은 점점 쫀득쫀득 해지고 있었는데....
일등석에 앉아 친절한 승무원과 같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정은 죽을힘을 다해 살아낸 딸과 그 딸의 아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폭포수 같이 시원한 선물이었다.
*슈크리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