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년 반의 긴 시간 의료 선교사로 훈련받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순간이었지만 눈물을 감추고 서 있는 아버지와 남편을 보며 온몸과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전날 우리의 여정에 참여한 아기가 자라고 있다는 행복한 소식을 들었기에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감정을 누르며, 모든 팀들이 인사를 나누고 기도하는 내내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우리 부부는 파키스탄과 한국에서 각각 최선을 다하고 사는 것이 정말 우리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서로 말하며 복잡한 웃음으로 포장한 잠깐의 이별을 위로했다.
“밥 잘 챙겨 먹고, 건강하게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 열심히 살아요”
그동안 항상 씩씩하던 내가 울어서 앞도 잘 안 보이는 부은 눈으로, 멋쩍게 손을 흔드는 남편을 다시 한번 더 보고 "어서 가세요" 인사를 하는데, 눈에 가득한 눈물에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남편 또한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모자를 한껏 눌러쓰고 어금니를 꽉 물고 울음 먹은 미소로 인사를 했다. 작대기처럼 곧은 자세로 서 있는 육군 중위는 내 가슴이 먹먹할 만큼 정말 멋있었다.
이제 정말 나 혼자구나! 마치 난 누군가의 손에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발을 딛는지 날아가는지도 모르게 흔들거리며 걸었다. 왠지 모르지만 자꾸 뜨거워지는 듯한 몸을 이끌고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팀들은 각각 흩어져 각자의 자리에 앉았고, 나 또한 나의 짐들을 수납 칸에 잘 올리고 앉았다. 그런데 내 몸에서 열이 자꾸 나는 것 같았고, 구역질이 날 것 같아서 의자에 안아 나는 "주님 도와주세요" 계속 머리를 숙이고 기도했다.
비행기는 활주로를 벗어나 마구 달려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데 내 마음은 아직 한국땅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자리에 앉아 잠시 잠을 잤는지 한 시간쯤 지나 기내식 방송을 듣고 눈을 떴다. 그런데 이미 내 몸은 상당히 뜨거워졌고, 내 머리는 말이 못할 만큼 아프고 구토가 시작되었다.
우리 선교 팀 은 의료선교를 위해 준비하고 가는 팀이라 비상약을 가졌을 것 같아서 혹시 해열제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팀 들은 모든 약들은 화물칸에 넣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승무원에게 물었더니 비행기 안에 상비약이나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 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열에 뜨거워진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가서 계속 구토를 했다. 그래서 너무 힘이 없어 승무원에게 누울 자리가 있는지를 물어보니 기내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하며 그날따라 빈자리 하나 없이 기내가 꽉 찬 상황이라고 미안하다고 했다. 승무원은 내게 물도 갖다 주고 뭐 라도 해주려고 애를 써 주셨지만 나의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 앉아 머리를 최대한 가슴으로 당겨 앉고 되도록 구토를 하지 않으려고 덜덜 떨며 견뎌야 했다. 정말 나는 지금까지 미처 몰랐었다 사람의 머리가 이렇게 무거운지 그리고 다리를 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 그렇게 14시간 동안 내내 열과 구토를 안고 드디어 카라치 공항에 도착했다.
긴 시간 준비하고 기도하던 그 땅 카라치에 내리자마자 나는 휠체어에 태워져 급히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은 작은 시멘트로 만들어진 방안에 아주 차가운 철제 침대가 덩그러니 있었고, 얇은 매트리스가 있었지만 무거운 머리를 둘 수 있고 다리를 필 수 있는 것 때문에 나는 울며 감사하였다.
겨우 응급조치를 마치고 열악한 그 병원에 둘 수 없다고 생각하신 선교사님들이 약을 직접 다 준비해서 팀이 머무는 숙소에 데리고 갔다. 이미 같이 있는 분들이 더 훌륭하신 한국의 의료진이기에 나는 참 축복을 받은 환자였다. 우리 팀의 잊을 수 없는 귀한 친구들이 같은 방에 자면서 잘 보살펴 주셔서 몇 주의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이 되었다.
이별의 아픔을 채 가라앉히기도 전에 갑자기 내 깊은 인생의 항아리가 송두리째 뒤집힌 것 같았다.
임신초기에 아무도 도울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려 미칠 것 같은 열과 구토를 안고 긴 시간 안전벨트를 하고 작은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던 것이 두고두고 깊은 두려움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답이 없는 질문을 자꾸 물어본다 ‘나는 왜 이렇게 먼 곳으로 혼자 와야 했을까?
‘결국 많은 분들이 선교를 가지 말라고 한 말들을 듣고 나오지 말았어야 했을까?’
그렇게 긴 시간 하나님과 씨름을 하면서 점점 나는 알게 되었다.
임신을 하고 남편까지 한국에 두고 온 대한민국 군인의 아내인 나는 지금 멈출 수 없는 문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금이 용광로에서 단련되어 순금이 되듯이 나의 모든 열과 구토는 내면의 깊은 갈증들을 태웠고 외로운 과정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첫 발자국부터 쓰라리게 맛보게 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27세의 헌신으로 인해 시작된 인생의 고난들을 피할 수 없다면 오직 한길은 무조건 견디고 통과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그 시간 온몸으로 배우게 되었다.
치솟는 열정과는 다르게 열에 버티다가 진이 다 빠진 나의 육체는 한 발자국도 제대로 딛지 못하고 가장 약한 모습으로 더 많이 사랑해야 하는 나의 첫 선교지 파키스탄 땅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