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진영에는 단감이 많이 나오는 곳인데 긴 이방인의 삶을 접고 드디어 작은 집을 갖게 되었다. 농막으로 시작하여 울퉁불퉁 아버지의 손으로 지으셔서 더 따뜻한 집이었다.
여름이면 습기 먹은 나무냄새가, 봄이면 연두색 잎새들의 화려한 부활이, 가을에는 여기저기 주황빛 단감들이 가득하였다. 물론 겨울에는 가을 내내 이별한 낙엽들과 함께 넉넉히 견뎌내는 나목들! 사계절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군부대 근처 여수 병원에서 나와 딸은 퇴원을 하였고, 마침 제대를 하게 된 남편과 함께 산후조리를 하려고 친정집에 들어갔다.
아! 얼마만인가!! 눈물이 날 만큼 그리웠던 엄마의 품에 나도 엄마가 되어 안겼다.
예전의 내가 아닌 폭풍우를 견디고 살아온 딸을 시간이 흘러 많이 약해지신 엄마는 꽉 안으시고 등을 두드려 주셨다. 선교지 나간 이후로는 말할 수 없었기에 그동안 당신의 딸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실 건데…
“사랑하는 하나뿐인 딸아 수고했다. 장하다 내 딸! ”
한참 동안이나 품에 안겨 그동안 무척이나 그리웠던 엄마의 냄새를 원도한도 없이 들이마셨다.
함께 살던 외할머니와 엄마가 해주시는 밥과 미역국은 환상적이었다.
그렇게 온 가족의 사랑에 푹 빠져 행복하게 한 달 동안 편하게 몸조리를 하였다.
어느덧 떠나야 할 시간이 되어 여러 가지 남편과 준비를 하면서 남편은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하고 오겠다며 기도원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떠나고 다음 날부터 내게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누워 있을 수 없었다.
아! 이게 웬일 인지..
내 심장이 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까지 수유를 하던 나는 급히 젖병을 사고 우유를 준비해 아기를 맡기고 응급실로 가야 했다.
엄마가 없는 것을 알아버린 아기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를 들으며 문을 닫고 아버지와 시외버스를 타러 걸어 나오는 그 길은 유난히 길었다.
“그동안 결핵균을 갖고 계셨네요, 많이 발전되어서 결핵성 늑막염이 되었네요. 당장 입원하시고 폐에 찬 농을 빼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은 응급실에서 급히 농을 빼기 위해 내 옆구리에 호스를 넣는 시술을 하셨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죽은 몸처럼 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아! 나 어떡하지?
우리 아기 수유는 어떻게 해야 하지?
퉁퉁 차오르는 두 가슴의 젖을 어떻게 해야 하지?
남편은 언제 올까? 연락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주님 어디 계십니까?
아! 이제 이 길을 멈춰야 하나요?
아니 이제는 멈추고 싶습니다….
옆구리에서 흐르는 피고름을 받아내는 고통은 내 마음의 깊은 절망보다는 덜 아팠다. 숨을 쉴 때마다 깊은 수렁으로 꾸역꾸역 끌려 들어가는 침대에 묶인 죄수처럼….
어떤 생각도 할 여유 없이 퇴원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회복을 하고 있는데,
파키스탄에서 연락이 왔다. 비자 연장을 다 같이 해야 하기에 속히 우리 부부가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 아직 오른쪽 팔을 들지도 못하는데! 퇴원해서 한 번도 주사를 놓아보지 않은 남편에게 가나 마이신 주사를 맞으며 결핵도 차근차근 치료하고 있었는데…
내 인내의 한계가 왔다.
이젠 정말 끝이다. 나는 더 이상 할 수 없다….
어느 날 어머니가 남편을 조용히 부르셨다.
'사무엘상 6: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가니라'
“자네 잘 듣게, 내가 아이를 잠시 돌볼 테니 둘이 먼저 가서 일을 하고 데리러 올 수 있을 때 데리러 오던지 아니면 우리가 데려 다 주겠네, 그리고 혜경이가 몸을 잘 회복하게 돕게나, 나는 자네 딸을 잘 길러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이 명령한 너희 부부의 일을 먼저 진행하게나, 나와 장인이 여기 있잖은가! 우리가 너희들의 사명에 함께 하겠네”
법궤를 짊어지고 나라를 위해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암소, 방금 낳은 송아지의 울음을 뒤로하고 떠나는 그 어미의 마음은 표현할 수가 없을 만큼 찢어질 것이다.
특히 나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떨어져 할아버지 집에 있다가 잠시 부산의 고아원에 까지 맡겨졌던 시간들이 너무 아팠었는데, 그 아픔을 이제는 나의 딸에게 전달해주어야 한다니….
“안됩니다 주님 이것만은 안됩니다.”
가난하고 아픈 사람을 치유하라고 먼 길을 갔는데 오히려 환자가 되었고, 이제 나는 모든 분 들에게 폐를 끼치는 선교사가 되어 버렸는데 이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참이나 앉아 울다가 갑자기 생각이 번뜩 떠 올랐다. 어머니도 막내동생 낳고 한 달이 지나서 오른쪽 폐에 농이 차고 드디어 폐를 절개하셨는데, 나 또한 딸을 낳은 지 한 달 좀 지나 오른쪽 폐, 그리고 결핵….
이렇게 비슷한 상황이 엄마와 딸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왜?
엄마는 그 아픔으로 평생 누워서 살고 계시는데, 그럼 나도?
아픔 때문에 누워서 평생 살고 계시지만 아픔조차 품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끝까지 희망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을 격려하며 살아가고 계시는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내가 당신처럼 쓰러져 평생 해야 할 일도 못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으셨던 것이었다.
아! 나의 어머니처럼 주어진 모든 아픔을 안고 가던 길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야 하는구나!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아프지 않은 생후 3개월 된 사랑하는 딸과 함께 미리 백일 사진을 찍고, 하나님에게 부족한 아빠 엄마 대신 딸을 잘 보호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고 길을 나섰다. 이번 돌아가는 길에는 남편과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