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 이 교수님이 엄마를 아신대요? 엄마가 아는 분이세요?”
“누구신데?”
“파키스탄 교수님 이신데요 제 담당 교수님이 되셨어요. 오리엔테이션 하는 데 제 옆자리에 앉으셨어요. 그래서 한 사람씩 소개를 하는데 제가 소개하고 나서 깜짝 놀라시면서 자세히 물어보셨어요. 그러더니 엄마를 아신다고 하시네요."
"아! 누구실까?"
1989년도 우리가 살던 그곳은 너무나 가난한 마을이었고, 걸프 전쟁의 여파로 병원도 문을 닫았었고, 약국도 찾기 어려웠던 곳이었다.
작은 도시에 교회를 섬기시던 목사님 부부 가 우리들을 따뜻하게 환영해 주셨다.
그분들은 우리가 그 도시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잘 돌봐 주시고 함께 서 주셨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는 예배를 보고 길을 건너 숙소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땅”
총소리가 들렸다. 교회 문을 닫던 현지 목사님의 둘째 아들이 총에 맞은 것이었다.
평안하던 모든 상황이 갑자기 다 바뀌었다.
우리가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도시를 떠나기를 원했던 누군가가 총을 쏜 것이다.
외국인이었기에 함부로 할 수 없어서 우리를 돕던 현지 분들에게 협박을 한 것이다.
너무 충격이었다. 한 번도 직접 들어 보지 못했던 총소리와 살벌한 테러 협박의 분위기들은 우리에게 그 도시를 떠나라는 의도로 아주 잘 전달되었다. 더군다나 우리가 외국인이었기에 우리를 테러하게 되면 국제적인 큰 문제가 되니 이렇게 우리를 도왔던 동족을 테러하게 된 것 같다.
우리는 그의 장례를 치르고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같이 안고 울었고, 무엇인가 깨끗하게 마무리되지 못한 상태로 야반도주하듯이 떠나야 했기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후,
그날 총소리를 듣고 놀라 숙소로 피했던 나의 뱃속에 있던 아들이,
그날 둘째 아들을 잃은 그 목사님의 큰 아들과 만났다. 그것도 담당교수와 학생으로...
더욱 놀라운 것은 오리엔테이션 하는 날 바로 옆자리에 앉았단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먼 지구의 끝에서 다른 지구 끝에 살던 서로 연관되었으나 모른 체 살았던 두 사람이 스승과 제자로 어떻게 이렇게 만날 수 있었을까?
누군가가 이미 계획하여 두 사람을 바로 옆자리에 앉게 한 것처럼...
내 삶에 일어난 이 멋진 반전 드라마는 반드시 시공간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나의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계획하셨던 일이었다고 깨달았을 때 나는 강한 전율을 느꼈다.
어떻게 이렇게 구체적이고 멋진 반전의 드라마를 쓰실 수 있으실까!
어린 나이 20대에 철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선택한 길이었다.
이렇게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의 시간들이 있을 때마다 나의 자격 없고 연약함 때문이라고 늘 자책하며 괴로워했었다. 그런 나의 깊은 무거움을 누군가가 알아준 것 같았다.
내 삶의 모든 순간을 다 보고 있는 것처럼 심지어 숨겨둔 내 감정조차......
아들의 전화를 끊고 한참 울었다.
아닌 척하고 숨기고 있던 모든 것들이 녹아내렸다.
홀로 돌아다닌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하나님 이 다 아셨구나....
더 이상 눈물이 안 나올 때까지 울었다.
그다음 해 일이 있어 미국을 가게 되었고 드디어 그 교수님을 만나러 갔다.
만나기 전부터 눈물이 흐른다... 울면 안 되겠지…
그리고 우리 때문에 아팠던 그분들의 아픔에 도움이 되지 못했기에 용서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분의 오피스 앞에 서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아들이 문을 열었다.
“선교사님 안녕하세요”
"어머나 아직 한국어를 잊지 않으셨군요. 너무 반가워요.”
“세상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놀랍습니다."
"네 저도 너무 놀랐습니다."
"참 교수님 이 시간을 저는 정말 기다렸어요.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저희 팀을 용서해 주세요.
저희들을 그 땅에 들어가도록 함께 서주신 교수님 의 가족은 하나님의 대사였고, 파키스탄 선교 시작의 영웅입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아닙니다. 하나님이 놀랍게 일을 하셨습니다. 저희 가족은 그저 순종한 것뿐입니다. 오히려 위험하고 먼 곳까지 오셔서 그 귀한 일을 하신 선교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과 아들과 나는 눈물을 삼키며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분은 4년 내내 아들이 졸업할 때까지 특별한 아버지 같은 교수님이셨다. 그렇게 부모님들끼리 얽힌 섬김의 관계를 교수와 제자로 더 멋지게 이어가셨다.
그 가족은 정말 숨겨진 영웅들 이셨다.
철저히 하나님이 하셨다고 믿는 믿음의 삶을 사셨다.
사랑하는 동생이 테러당하고 한분 한분 그 고통으로 일찍 천국에 보내드리고 그 아픔을 되새기며 슬프게 살아온 삶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아픔을 인정하고 그 무게와 가치만큼 더 열심히 못다 이룬 사명을 이어가며 부모님이 꿈꾸셨던 가난과 질병을 퇴치하는 일에 애쓰고 예전보다 오히려 더 멋진 오늘을 살고 계셨다.
또한 그분은 20년이나 지난 지금 이 시간에 옛날 그 시간에 있었던 한 여자 선교사의 뱃속에 있던 아기를 만나고 그 아기의 교수님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그의 아버지와 동생처럼 삶으로 살아 내고 있었다.
죽었다고 모든 것이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 교수님은 오히려 더 강한 힘으로 다시 살아나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를 이어가며 더 놀랍게 헌신하고 있고, 용서의 강을 지나며 덧 붙여진 놀라운 내적 강인한 힘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았다.
이 역전의 드라마를 쓰는 작가 이신 하나님께서도 눈물이 그렁그렁 하시며 웃고 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