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택연금 1

이해할 수 없는 가장 두려웠던 시간

by 천혜경

우리가 일하던 마을을 들어갈 때면 길 고랑에 질퍽하게 널브러져 있는 아이들의 배설물들을 밟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서 걸어야 했다.

어쩌다 비가 오는 날이면 물이 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구석구석에 모여 작은 진흙탕 호수를 만들기도 했다.

그 마을에 작은 또랑을 만들어 물이 내려가도록 하고, 길을 평평하게 만들기도 하며 여러 가지로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말은 하지만 글자를 모르는 분들이 많이 계셨고, 아이들도 학교를 못 가고 집에서 일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에는 쉬는 날”이라는 이름으로 큰 나무 밑에 작은 학교를 시작했다. 이곳저곳 두루 살피며 그들을 돕는 헌신된 선교사님 부부를 따라다니며 햇병아리 선교사인 우리는 열심히 배웠다.



어느 날 남편이 내게 목사님들을 세미나와 함께 식사를 섬겨야 하는데 도와달라고 전화를 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열심히 달려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시장을 보고 부지런히 현지 여자분의 도움으로 이것저것 맛있게 만들었다.

현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요리법을 배우는 마음으로 신나게 준비를 하였다.

맛난 음식을 잘 차려 맛난 식사를 하고 아주 달달하고 맛난 짜예와 디저트를 마무리로 행복하게 현지 목사님들의 세미나도 끝났다. 몇 명의 리더분들이 거실에 아직도 계셨기에 물을 갖다 드리려고 조용히 문을 열고 섰는데...


갑자기 한 현지 목사님이 한국어로 가슴을 찌르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두 한국 사람과 문 뒤에 숨어 있는 나만 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 공간에 함께 있는 현지 목사님들은 궁금한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문고리를 붙들고 뒤에서 온몸을 덜덜 떨며 서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음이 처럼 차갑고 그리고 심장은 내 귀에도 들릴 만큼 크게 쿵쾅 거렸다.


안에 있는 목사님과 남편도 모두가 얼어버린 상태로 한참이나 그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 있는 몇 명의 현지인 목사님들은 전혀 무슨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분의 요지는 우리를 고소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덜덜 떨려 들고 있던 물도 갖다 드리지 못했는데 그 사람과 현지 목사님들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상황이 심각해서 나는 같이 머물기로 했다. 그리고 상황을 알아보러 큰 도시로 선교사님은 급히 가셨고, 우리 둘은 그 빈 집에 남아 교회와 상황을 돌보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남편은 그냥 있을 수 없다고 교회 상황을 보러 간다고 나갔다.


그런데 하루 종일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 혼자 집에서 온종일 마음 졸이고 기다렸다. 저녁이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무능함 에 참 많이 답답했다. 혼자 집 밖을 나가지는 못하고 계속 두려운 마음을 누르며 온 집을 돌며 큰소리로 기도를 했다.

나의 상황을 알릴 수 있는 분은 딱 한 분 하나님이었다.


그 시절에 인터넷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찬양을 들을 수 있는 MP3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온 힘을 다해 뱃속의 아기가 놀라지 않게 하려고 두 손으로 배를 잡고 마음껏 소리치며 울며 기도했다.

이대로 빈 집에 나 혼자 밤을 지내야 하는가?

남편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그때 욕하던 그분이 혹시 해치는 것은 아닐까?

늘 길에서 누구를 만날 때마다 잘하지도 못하는 우르두어로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그 집에 까지 가서 짜이를 얻어 마시고 오는 남편의 습관을 생각하면서 조심하지 않는다고 속으로 원망도 하며, 온갖 마음의 분주함을 떨쳐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렸다. 급히 달려 나가 보니 남편이었다.

어둠이 깊은 현관문을 열고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것이었다. 난 하루 종일 피가 말랐는데…


"아니 왜 이렇게 늦었어요?"라고 화를 냈다.

"아고 힘들다! 오늘 교회를 둘러보고 오는 길에 경찰이 갑자기 잡아서 경찰서 갔었어.

그런데 경찰이 계속 뭐라고 하는데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그냥 웃고 있었지.

영어도 우루두어도 다 안되니까 자기들도 답답한지 계속 대화하려고 하다가 그냥 풀어 주더라고.

연락할 길도 없고 이렇게 힘들게 해서 미안해 여보”

현지 언어가 잘 안 되는 남편과 경찰은 대화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영어로 시도했지만 소통을 하지 못하고 결국은 하루종일 심문하다가 할 수 없이 그를 풀어 준 것이었다. 언어를 못하는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우리는 왜 경찰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몰랐다.

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그 나라 사람들을 돕고 있는 귀한 선교사님을 그 현지인 목사님이 왜 이렇게 괴롭히는지도 잘 몰랐다.

어느 누구도 이 상황을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일단 경찰이 개입한 이상 우리도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며칠 뒤에 목사님은 집에 오셨다.

경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다음날 가택연금 통보를 들고 집을 찾아왔다.


커튼을 친 창문을 넘어 살짝 보니 경찰차들이 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갑자기 이유도 정확히 모른 채 우리는 집안에 갇히게 된 것이었다.

가택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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