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에는 나는 앉아 있는 것도 힘이 들었다.
절망과 희망과의 갈등이 내 심장을 엇 박자로 뛰게 만들었다.
억지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가만히 누워서 한 팔로 눈을 누르며 누워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삐꺽 거리는 짜르바이의 소리가 여전히 내 귀를 짜증 나게 하였다.
누구를 원망할 시간도 없었다. 시원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현지어 능력이 없는 내가 제일 원망스러웠다.
그렇다고 길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밖에 있는 경찰들에게 시원하게 따져 물어볼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조용히 기다리는 시간은 내게 가장 큰 훈련이었다.
우리의 소식을 들은 교회 성도들이 어떡하든지 우리가 안전한지 살피려고 애를 쓰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려고 애를 썼다.
힘든 시간일수록 수동적이었던 공동체는 갑자기 능동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어느 날 누군가 대문을 두드렸다. 놀라서 급히 문을 열어보니 경찰이었다.
상부의 지시로 이제 가택연금을 푼다고 하였다.
그리고 집주위에 둘러 서있던 경찰차와 경찰들이 다 돌아갔다.
나는 온몸에 피가 흐르는 전율이 느껴질 만큼 행복했다 그리고 갑자기 나가서 뛰어다니고 싶었다.
내심 이런 날을 올 것을 간절히 기대했었고, 이렇게 풀릴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후덜덜 다리가 다 풀렸다. 우리 부부와 선교사님은 역시 하나님이 하셨지!라고 하면서 너무 기뻐하였다.
며칠 전 우리가 같이 기도할 때 느꼈던 격려와 확신의 말씀을 서로 나누며
이렇게 하나님이 직접 기적을 일으키시는데 어떻게 선교를 포기할 수 있겠냐고
서로 격려를 하며 오랜만에 시장도 보고 행복해했다.
그날 바로 교회 전도사님이 오셔서 어떻게 우리가 풀려 났는지 알려 주셨다.
우리의 상황을 위해 기도하던 교회의 모든 성도들과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 사람들은 죄가 없다 는 조서를 써서 정부의 사람들에게 알린 것이었다.
우리가 가택연금 되었던 그 시간에 그분들의 조서가 여러 과정을 거쳐서 법원과 경찰에 들어가서 승인을 받게 된 것이었다.
이 충격의 시간을 통해 기적을 맛보았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는 귀한 친구들을 얻은 결과였다.
그동안 애쓰신 선교사님 의 헌신적인 삶이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마을 전체에 많은 변화를 주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억울하게 어려움을 당하신 그 선교사님을 위해 모든 현지분들이 힘을 합해서 법적인 엉킴을 멋지게 풀어 주었던 것이었다.
선교를 하는 나라마다 문화와 말이 서로 통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오해들이 발생한다.
특히 현지인 사역자들에게 선교에 사용되는 재정은 늘 오해의 근원이 된다.
우리가 사역을 했을 당시 우리는 오히려 현지인 사역자들보다 사실 가난했다.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아무것도 모르는 땅에 살러 들어간 사람들이 무엇을 그리 많이 갖고 있을 수 있겠는가?
문화도 언어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무엇을 그리 많이 누릴 수 있겠는가?
그 당시에는 은행사정이 지금 시절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느렸기에 그리고 은행사고도 많았기에 무사히 그 날자에 도착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래서 사역비도 문제이지만 생활비 또한 매달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었었다.
그렇지만 말하지 않으면 그 속사정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우리가 그곳에 간 이유는 가진 것도 다 나눠 주고 살기 위해서인데...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가택연금 상황도 현지인 목사님이 오해를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자세히 그분들과 만나서 이야기 나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너무 마음이 아픈 시간이었고 같이 일하던 현지인 리더분들 조차도 서로 미안해하셨다.
모든 두려웠던 상황이 갑자기 다 썰물처럼 사라졌다.
하늘에서 하나님이 보고 계신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선교사님을 도와 하나하나 벽돌을 쌓아가는 것을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이방인들은 현지인들과 삶을 함께 살아가는 친구가 되었다.
그곳에서 머물렀던 시간은 짧았고 강력했다. 중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만 해도 심장이 두근두근 할 만큼...
그리고 그다음 선교사들이 들어가 아주 작게 나무밑에서 시작한 학교가 한 단계씩 학년이 만들어지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지금은 대학까지 세워졌다고 한다.
가난하게 살았던 그 마을에 많은 변화가 있게 되었고, 현지 교회 성도들의 열정적인 헌신으로 작은 교회였지만 그 이후로 여러 곳에 개척이 되었다고 한다.
선교사들의 이해할 수 없는 핍박과 아픔이 있는 시간, 우리가 그 상황을 인내와 사랑으로 풀기 위해 인내와 눈물로 살아내는 동안 그것을 지켜보던 현지 동역자들이 더 멋지게 성장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리는 그 헌신만이 다음 세대가 더 멋지게 달리도록 전달해 줄 수 있는 살아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 아픔의 시간들은 오히려 선교사들에게 기쁨의 훈장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