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두 번째 이별

뜨거운 파키스탄의 여름날!

by 천혜경

45도를 넘는 뜨거운 파키스탄의 여름은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뜨겁게 만든다.

빨래를 해서 작은 내 방 앞에 널어 두면 15분이면 말라 버릴 만큼 뜨겁고 건조한 여름이었다.

그런 여름이 되면 공기뿐만 아니라 땅도 뜨거웠다.

특히 비릿한 물냄새를 품은 진흙땅의 쿰쿰한 냄새가 공기 안에 가득했다.

너무 더워 잠을 잘 수 없는 밤에는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어 그냥 견디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느 날 시원하게 잠자는 방법을 같이 살고 있는 선교사님이 알려주었다.


두꺼운 밍크 담요를 방바닥에 깔아 그 위에 물을 자작하게 붓고 젖은 담요 위에 몸을 여기저기를 돌려가며 잠을 자면 물이 날아가면서 온몸의 열을 식혀주어서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물에 퉁퉁 붓기는 했지만, 그래도 더운 여름을 이겨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에어컨이 있는 가정의 거실에 가서 잠시 쉬고 오는 것은 그날의 보너스였다.


비가 하루 종일 오는 날에는 진흙과 짚으로 만든 벽돌로 지어진 나의 작은 방벽이 빗물에 녹아 무너질까 봐 뜬 눈으로 하얗게 지새우기도 했다.




남편과 나는 언어도 열심히 배우고 주위 현지인들과 만나기도 하며 즐겁게 지냈다.

정말 힘들었던 것은 현지어를 배우는데 선생님들이 영어로 가르치시는 것이었다.

현지어도 물론 모르지만 내게 더 문제가 된 것은 영어이다.

겨우 손짓 발짓을 하는 수준이라 매일 언어 공부하는 시간마다 진땀을 뺐다.


아침이면 모두 고랑에 한 줄로 앉아 용변을 보던 마을의 아이들이 외국인의 삶이 신기 한지 거의 매일 집 앞에 와서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두고 온 딸이 생각나서 어떤 날은 아이들이 기다려졌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매일매일 문화와 언어를 익히면서 결혼한 부부의 삶을 어느덧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는 나와 남편은 정말 행복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정말 기적 같았다.


그런데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아직 결핵약을 먹고 있는 내 상황에 아이가 건강할지도 염려가 되었고, 두고 온 딸 생각에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그렇지만 이제는 남편이 옆에 있어서 감사했고, 첫 아이 때는 혼자 입덧을 견딘다고 고생했 는데 이번에는 돌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첫 임신 때의 외로움을 보상받는 것 같았다.


남편은 한국에서 처럼 한밤중에 족발을 사다 주지는 못했지만 맛있는 석류 주스를 열심히 만들어 주었다.

남편이라는 존재의 든든함과 보호받는 느낌이 내 삶에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 와중에 우리 부부는 또 하나의 난관을 만났다. 아내를 따라 나온 남편 선교사이고 또 의료진도 아니라서 팀 안에서 해야 할 일이 분명하지 않아 남편의 위치가 여러 가지로 곤란했다.


우리 문화 안에서 정상적인 선교사 부부로서 남성이 결혼하면 당연히 가족으로 인정 이 되지만, 나의 경우는 여성이 결혼한 경우라서 남편의 위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동스러워했다.


후원이 가족의 절반을 받게 되었다. 그나마 남편이 없는 시간에는 나 혼자였기에 괜찮았는데, 남편이 오고 내가 임신을 하게 되니 매달 집세를 내고 나면 재정적으로 많이 어려웠다. 게다가 가끔 재정이 늦게 도착하게 되는 달에는 더욱더 힘들었다.

처음부터 우리나라 문화와 맞지 않는 시작을 한 우리 부부는 많은 것을 감당해야 했다.


그렇지만 우리보다 백배나 더 가난과 아픔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이 땅에 왔기에 우리의 상황에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매일 숨을 쉬며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 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었다.


생명의 위협과 가난의 고통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여성들의 삶!

혼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도 없고, 아파도 병원에 쉽게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삶!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은 정말 최고의 축복인 삶!

어떤 여자 아이들은 팔려가기도 하고, 또는 어린 나이에도 노예처럼 일을 해야 하는 상황들...


이런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부부가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우리 부부의 이런 작은 어려움들은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의 상황에 둘러빠져 우리가 왜 여기 왔는지 목적을 잃지 않으려고 남편과 나는 오히려 더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다.




어느 날 다른 도시에 살고 계신 선교사님이 오셔서 남편에게 새롭게 개척하는 일에 함께 하자고 제안하셨다.

방금 군대를 마치고 온 남편의 입장에서 쉽지 않은 개척의 일에 함께 하는 것은 상당히 흥분되는 제안이었다. 남편의 마음에 깊이 기쁨이 살아나고, 나 또한 우리가 함께 있기 위해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는 남편의 입장을 생각할 때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더 좋은 길이라고 확신하였다.

서로 또 떨어져 힘들겠지만 젊은 시간에 멋진 훈련과 도전의 시간이라고 믿고 그 도시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며칠 뒤에 우리는 서로 눌러 놓은 감정들이 마구 흘러나올까 봐 억지로 용감하게 서로 격려를 하며 멋진 두 번째 이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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