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진 세 번째 이별!

결정에 책임지는 삶

by 천혜경

사람은 어떻게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일까?

사람들이 결정을 내릴 때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한다. 그 요소들은 감정, 경험, 정보, 가치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의 삶에서는 항상 옳거나 편한 선택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로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에 따라 결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의 결정은 종종 예상치 못한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왠지 모르겠지만 쉽지 않은 길들 을 선택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혹시 내가 정서적인 문제가 있어서 감정이나 가치관에 의해 굳이 힘들고 어려운 것에만 이끌리게 되고 그 어려울 것 같은 것만 결정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지난 3여 년의 파키스탄의 시간은 정말 장벽을 하나 넘으면 또 다른 장벽 이 나타나는 소설 같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통해 많이 담대해졌고 성장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진짜 가치 있는 삶인지 참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남편이 비행기로 3시간이나 먼 곳에서 일을 하다가,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 때문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어서 다시 내가 있는 큰 도시로 와서 합류하게 되었다.

역시 남편은 교회를 돕고 세우기 위해 열심히 일에 뛰어들었고, 매주 우리 집은 그 교회의 청년들로 붐볐다. 나는 병원의 일들을 여전히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의 비자 연장이 거절이 되었다.

아무래도 다른 도시에서 있었던 일이 영향이 되었는지 도무지 해결 방안이 없었다.

이민국에서 얼마의 시간을 주고 이제는 나라를 떠나야 한다고 했다.

내가 폐결핵과 류머티즘 그리고 신장약을 줄줄이 먹고 있었고, 아들을 출산한 지 약 3개월 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고, 또 1년 3개 딸은 한국에서 친정어머니가 돌봐주고 있었는데 이제 다시 남편과 이별을 해야 했다.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너무 힘들었다.

보통은 가장인 남편의 비자가 거절이 되면 가족 모두가 나가야 하는데, 나의 입장에서는 남편을 따라 나가야 하는지 아니면 또 남편 없이 이제는 어린 아들과 함께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 해야 하는지 너무 많은 갈등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소중한 시간인데 밤새 잠을 못 자고 고통스러웠다.


드디어 이민국에서 남편에게 나가라고 연락을 주었다.


이제 우리는 세 번째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우리 부부는 몇 날 며칠 기도하다가 내가 아들과 같이 남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내게 주어진 임무를 다 마치지 못한다면 평생 후회 할 것 같았다.


물이 좋지 않아 늘 아메바성 장염과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아들을 안고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아 우리 한번 열심히 살아보자 아빠가 기다리는 곳으로 엄마가 하던 일 다 마치고 가자 그때까지 우리 행복하게 살아보자'


드디어 남편이 떠나야 하는 날이 되었다. 울던 아들을 안아 재워놓고 남편과 나는 손을 잡고 기도를 했다.

그리고 이번에만 헤어지고 다시는 우리 헤어지지 말고 늘 같이 살자고 약속하고 서로 씩씩하게 힘든 시간을 잘 넘어가자고 격려하며 한번 꽉 서로 포옹하고 씩씩하게 혼자 공항으로 갔다.


우리 부부는 이제 제법 익숙해진
세 번째 이별을 했다.


신기하게 딸과 아들은 모두 태어나서 3달 즈음에 아빠랑 헤어졌다.

가족이 같이 사는 것이 이렇게 힘든지 정말 몰랐다. 부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나의 경우는 그 어떤 것 보다 내게 주어진 이 임무를 마치기 위해 가족들이 모두 흩어지기도 하고 모이기도 하였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가장 힘들었던 우리 가족의 시간에 도울자들이 옆에 있어서 잘 이겨낼 수 있게 되었다.


남편과 나의 상황을 우리 가족들이 알게 되었고, 아버지는 지금 나의 상황이 어려우니 76세의 외할머니를 같이 있게 하자고 결정하셨다. 물론 외할머니도 좋다고 하셨단다.

"내게 곧 할머니랑 너의 딸을 데리고 들어갈 테니 조금만 참아라"라고 전화로 이야기하셨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출퇴근해야 하는 내 상황을 아버지는 다 보고 계신 것처럼 외할머니를 모시고 오신다고 했다. 그리고 늘 보고 싶었던 1년 3개월 된 딸을 데리고 오겠다고 하셨다.

정말 기가 막힌 시간에 아빠는 없지만 우리 가족 3명은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다.


드디어 저녁에 도착하는 가족들을 만나려고 우리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선교사님의 봉고를 빌려 공항으로 나갔다.

훌쩍 커버린 딸이 아장아장 걸어 나왔다. 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보자마자 나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너무 고마웠다. 사고뭉치인 딸의 모든 힘든 과정을 도와주시려고 이렇게 장모님과 어린 손녀를 데리고 긴 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주신 아버지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1년 동안 떨어져 살아 엄마를 알아보지 못하는 1년 3개월 된 딸은 갑자기 낯선 여러 사람이 인사를 하니 놀랐는지 잠시 울다가 갑자기 남자 선교사님 한 분을 보고 "아빠"라고 불렀다.

그 선교사님은 당황하셔서 눈물을 글썽이며 "아고 나는 너의 아빠가 아니야 곧 아빠를 만날 거야 "라고 하시면 눈물을 닦으셨다. 내 마음은 너무 시리고 아팠다. 이런 상황을 두 아이에게 겪게 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


아버지 또한 너무 속이 상하셨는지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매일 우시면서 남편도 없이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딸이 너무 가슴 아파서 내게 모든 일을 접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말씀하셨다. 돌아갈 수 없는 나도 아버지의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가슴이 너무 아파 그저 눈물만 흘렸다.


나도 남편도 우리가 편한 대로 결정할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결정에 뛰어들어 도와줄 수도 없었다.

그 결정과 함께 우리가 책임지고 걸어가야 하는 길을 피할 수도 없었고 모른 척 넘어갈 수도 없는 그 시간이었다.


그저 모든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매일 주어진 24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 밖에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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