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탈리아 맞아? / 북부이탈리아 (볼차노, 오르티세이, 시르미오네)
여기 이탈리아 맞아? 돌로미티 가는 길
이탈리아에서 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다고? 스위스가 아닌 이탈리아에서? 그렇다.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이탈리아어는 Dolomiti, 영어로는 돌로미테 Dolomites로 불림. 여기서는 이탈리아어 표기로 적겠음.)는 알프스 산맥에 자리한 산악지대로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도 선정될 만큼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거대한 알프스 산맥을 영토로 가진 국가로는 스위스를 비롯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등으로 자그마치 8개국에 걸쳐 있는데, 돌로미티가 바로 알프스 산맥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3,000m 이상의 봉우리가 18개, 빙하가 41개로 총 면적이 141,903ha로 제주도의 약 세 배 크기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의 돌로미티는 여름 시즌에는 트레킹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로 붐비고, 겨울 시즌에는 스키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로 각광 받고 있는 곳이다. 돌로미티에는 많은 아름다운 도시와 마을이 있는데, 우리는 그 중 돌로미티의 서쪽 거점 도시인 볼차노와 오르티세이를 중심으로 돌아볼 예정이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있던 우리들인데, 차로 달리다 보니 어느새 완전히 다른 풍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로 양 옆으로 기암괴석의 바위산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베네치아랑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그치?”
“베네치아? 난 베네치아는 벌써 잊었는 걸.” 심이 툭 내뱉은 말이다.
“뭐라고? 너무 빨리 베네치아를 잊은 거 아니니?”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겠어. 여기가 최고야!”
그렇다. 여행은 심처럼 하는 거야. 유럽 여행이 처음인 심이지만, 여행 고수가 되기에 충분한 마인드를 이미 장착하고 있는 심이다.
창문을 열자 심의 감탄사는 더욱 커진다.
“얘들아, 창문 좀 열어보렴. 정말 미쳤어.”
“국어 선생님의 표현이 너무 부족한 거 아냐?”
‘미쳤다’만 외치는 심에게 한 마디 해보지만 나 역시 그 순간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미쳤다는 표현 밖에는...
볼차노로 가까워지면 질수록 돌로미티의 산세는 더욱 기세등등하다. 같은 나라인데 달라도 너무 다른 풍광에 혹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국경을 넘은 것은 아닌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벌써부터 내일 만나게 될 돌로미티가 기다려진다.
사람들이 겨울 돌로미티를 찾는 이유
코로나 발발로 스위스 여행이 무산되며 한동안 나는 방구석 랜선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코로나가 풀리면 어디를 제일 먼저 갈까 하는 마음으로... 그때 우연히 이탈리아 여행 책자를 보다 ‘여기, 이탈리아 맞아?’ 하는 사진을 보게 된다. 에머랄드빛 호수를 낀 아름다운 산길에 트레킹을 하는 장면의 사진이었는데 그곳이 스위스가 아닌 이탈리아라는 것이다. 그 사진 한 장에 다음 여행지는 무조건 이탈리아로 결정한다. 돌로미티에서의 트레킹을 꿈꾸며...
그런데 문제는 내가 돌로미티로 여행 가는 계절이 겨울이라는 사실. 돌로미티의 여름 트레킹 정보는 많은 반면, 겨울 트레킹 정보는 좀체 찾을 수 없었다. ‘겨울 트래킹에 대한 정보 부재는 아직 돌로미티가 한국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럴거야’ 하며 케이블카 운행만 한다면 가까운 거리 정도는 트레킹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무턱대고 가보기로 한다.
아침 일찍부터 심은 빨간 매니큐어 손톱을 빛내며 오늘의 점심 도시락인 김밥 싸기에 분주하다. 트레킹을 하다가 아름다운 곳에 머물며 먹을 부푼 꿈을 가지고... 거기다 하루종일 추운 날씨에 노출될 우리들을 위한 아침 메뉴로 준비한 따뜻한 떡국 덕분에 배까지 든든하다. 이로서 트레킹 준비 완료. 우리들의 오늘 일정은 오전과 오후로 나눠 돌로미티의 여러 봉우리 중 잘 알려진 세체다와 알페 시 디우시를 오르기로 한다. 밤사이 눈이 내렸는지 지붕마다 새하얀 이불을 덮고 있다. 여기가 알프스 산 자락이 맞음을 인증하기라도 하듯...
세체다에 오르기 위해서는 오르티세이에서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그런데 세체다에 오르기 위한 케이블카 타는 곳에 도착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스키복에 스키 장비를 들고 줄을 서 있다. 이곳에 스키를 목적으로 오지 않은 사람은 우리들이 유일하다. 한 쪽에선 10대로 보이는 학생들 무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떼창을 하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내 카메라 앵글에 잡힌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들 ‘나 지금 너무 행복해요.’ 하며 소리치는 듯하다. 낯선 사람이 들이대는 카메라 앵글에도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이날따라 어찌나 부럽던지...
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본 장면은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설산으로 변하기 전의 녹색으로 가득한 산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이곳이 이렇게 전부 자연스키장으로 변모한다는 것이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기하다. 오르면 오를수록 점점 더 눈이 많이 오며 어느새 새하얀 눈이 온 세상을 다 덮어버렸다. 스키인들에게 이곳은 천국이구나. 왜 케이블카 타기 위해 기다린 사람들의 표정이 행복하게 보였는지 세체다에 올라오고 나서야 비로소 알 것 같다.
세체다가 보이는 산장에 도착한 나는 우리들 눈 앞에 펼쳐진 장면 앞에서 왜 겨울 세체다 트레킹에 대한 정보가 없었는지 비로소 납득할 수 있었다. 이곳 세체다 정상에서는 겨울에 트레킹을 할 수 없다. 산 전체가 스키장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1시간 정도라도 트레킹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는 달리 산장 카페에서 비싼 커피만 한 잔 하고 내려왔다. 눈발이 강하게 날리는 날씨 탓에 세체다 산 봉우리는 구름에 가려 살짝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 솔직히 처음엔 1인당 거금 41유로를 지불하는 케이블카비가 아깝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고, 내려오는 길, 특히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에 우리 세 명이 유일했다. 왜냐하면 스키를 목적으로 올라간 사람들이기에 케이블카를 탈 이유가 없으니까... 그 덕분에 케이블카 안에서 360도 회전하며 아름다운 설산을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그때 본 겨울 세체다의 모습이 오랫동안 나의 기억에 남아 있다. 그것만으로도 겨울 세체다에 오를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오르티세이 마을의 우아함의 비결
트레킹 하며 먹으려던 김밥이 배낭 속에 그대로 있다. 세체다에서 배가 고팠으나 산장에서 김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김치가 들어간 김밥이라 냄새 때문에... 점심 때를 놓치고 세체다에서의 아름다운 풍광 대신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 벤치에서 김밥을 먹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이러려고 김밥을 준비한 것이 아닌데...ㅠㅠ 그래도 심이 정성스럽게 싸준 김밥인데 버릴 순 없잖아. 솔직히 그런 심정으로 김밥을 먹었다. 그런데 한 입 먹는 순간 두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다. 분명 심이 대충 싸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리고 나는 원래 단무지가 안 들어간 김밥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계란말이, 쇠고기, 그리고 김치로 싼 김밥이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걸까? 비록 트레킹을 하며 세체다 봉우리를 조망하며 먹으려 했던 기대는 무너졌지만 그래도 김밥이 너무 맛있고, 비록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 벤치지만 눈 앞에 아름다운 오르티세이 마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광이 있다. 뭘 더 바라겠니?
당초 오후에는 알페 시 디우시에 오르기로 했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 어차피 올라가도 제대로 조망을 못 하리라는 것을 알고 우리는 과감히 이를 포기하고 대신 오르티세이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기로 한다.
저마다 다양한 화사한 파스텔을 칠한 외벽은 물론 각 집마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개성 넘치는 장식들이 예뻐도 너무 예쁘다. 어느 하나 같은 집이 없다. 특히 오르티세이의 집들은 우아함이 특징이었는데, 그 이유는 집의 일부가 정교한 나무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집들은 처마와 창틀에 장식된 나무가 마치 레이스 천을 둘러 쳐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파스텔의 외벽에 단아한 나무의 틀이 어우러져 우아함을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다. 오르티세이가 목각 공예품으로 유명한 마을이라고 하더니 나무로 장식한 목공품을 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베네치아에서는 수상 구유를 봤는데, 이곳 오르티세이에서는 나무로 깎아 만든 대형 구유가 인상적이었다.
눈이 내리는 돌로미티. 부산에 살고 있어 눈길 운전 경험이 없어 눈이 더 많이 내리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주차장으로 넘어가는 길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텔 야외 수영장에서 혼자서 수영을 하고 있는 소년을 보게 된다.
“와, 저 아이 뭐야? 저렇게 비싼 호텔에서, 그것도 눈이 내리는 한 겨울에 야외 수영을 즐기는 저 아이는 도대체 어떤 팔자를 타고 난 걸까?”
오르티세이에서의 숙박을 시도했다가 숙소 가격대다 너무 비싸 엄두도 내지 못 한 우리들이기에, 숙소는 물론 야외 온천 수영장까지 독차지하며 즐기는 저 아이의 팔자가 마냥 부러웠다. 그 소년은 우리를 향해 해맑게 웃으며 두 팔까지 흔들며 인사한다.
“다음 생이 있다면, 이탈리아에서 저 소년 같은 팔자를 타고 태어나고 싶다.”고... 웬만해선 다른 사람 팔자를 부러워하지 않는데 이 소년의 팔자는 부럽긴 하더라...ㅋㅋ
그런데 갑자기 든 생각... 오르티세이에 온천수가 나나? 따뜻한 야외 수영장의 따뜻한 물의 정체는 뭐지?
조안나 여행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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