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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숙 Nov 13. 2019

불편한 건 유니클로 불매운동뿐만이 아니다.

스몰토크

악화일로에 치달은 한일관계는 자유로운 소비활동을 제시킬 뿐만 아니라, 구에게나 그렇듯 나에게도 상당히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한다. 


일어일문을 전공한 덕분에 부러 찾아주 재일교포, 일본인 고객이 몇몇 다. 공식적인 업무가 오늘로 마지막이었던 마쯔다 할아버지 내외그런 분들이었. 급속도로 악화된 한일관계가 불만이라며 투덜대던 마쯔다 할아버지다. 


오늘은 이른 아침 빈속을 달래고자 가방에 넣어 온 말린 과일이 검역에 걸리는 바람에 언제는 통과되고 언제는 걸리는 한국 검역이 엉망이라며 귀여운 앙탈을 부리기도 하셨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유난히 싫어하는 일본인에게 본인이 넣어온 말린 과일 몇 조각으로 인해 다른 일행을 기다리게 했다는 사실이 몹시 미안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을게다.


80대의 연로한 나이로 더 이상 한국에 자금을 예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노부부는 자금을 일본으로 반출 중이었고, 오늘로 통장 잔고는 0되었다.

평소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계시기만 했던 할머니가 먼저 입을 떼셨다.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요. 젊은 시절 바쁘다는 핑계로 와보지 못하다 88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자주 못 와보아도 우리 부부는 한국에 대한 애정... 그러니까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 대한 안타까움이 많은 사람으로서 앞으로 양국 관계가 좋아지면 좋겠어요."


일본으로 귀화했더라도 재일교포 1세, 2세 정도는 한국말을 꽤 구사하기도 하고, 말과 행동에서 간간이 한국적인 요소가 묻어난다. 마쯔다 노부부에게는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누가 보더라도 그저 전형적인 일본인 노부부였다. 하지만 애국심이라는 단어에서 겨우 알게 되었다. 마쯔다 할아버지 내외도 그 뿌리가 한국이라는 걸.


일본인 신분으로 살아가는 무수한 재일동포가 일본에 거주하고 있고 나는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나왔다. 투자의 개념도 있겠지만 일본에서 열심히 번 돈을 가지고 오는  나의 뿌리를 잊지 못해 '본능적으로 '라는 걸 안다.


대학시절 민간 교류회에서 만난 한 재일교포 3세 친구의 이름은 '충치'였다. 이름을 듣는 순간 묘한 웃음을 참는 한국 친구들 앞에서 '충치'가 말했다.


" 충치가 썩은 이라는 뜻이라는 걸 최근에 알았어. 하지만 내 이름의 한자는 충성忠, 다스릴治이지. 아버지가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한국인이라는 걸 잊지 마라고 지어주신 이름이야.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건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어. 나 역시 취업을 앞두고 곧 귀화하지만 한국인이라는 내 뿌리는 잊지 않을 거야. 나는 내 이름이 자랑스러워."


아무도 웃지 못했다. 또래 중 조국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새겨본 사람이 있었을까? 조국이라는 울타리 안에 살며 가슴으로 느끼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충치 이야기가 간간이 떠오르는 건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조국을 '충치'같은 친구들은 매 순간 가슴 아프게 느꼈겠구나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아빠 역시 일본에서 태어난 독특한 출생이력이 있다. 어린 시절 어느 집이나 하나씩 가지고 있던 전국 전화번호 명부에는 수많은 동명이인이 있었다. 하지만 아빠의 일본식 이름을  두꺼운 명부에서 유일무이했다. 하나밖에 없던 아빠 이름을 찾아보며 신기해하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를 만큼 나에게는 인상 깊은 에피소드였다.


오사카에 터를 자리 잡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식구 역시 재일동포, 혹은 일본인으로 귀화한 재일동포다. 최근에서야 재일동포도 주민번호를 부여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민번호 뒷자리가 일괄적으로 0000000인, 말하자면 주민번호도 부여받지 못한 국민이었다.


한 번 한국에서 살아본 적 없는 나의 사촌은 일본에서는 한국사람 취급을 받고, 한국에서는 일본 사람 취급을 받는다 다. 그깟 한국 국적이 뭐라고 지켜야 하나 싶으면서도 끝까지 지키고 싶은 사촌의 마음도 십분 이해한다.


그런 사촌의 눈에 비친 양국의 악화된 관계는 내가 느끼는 것 이상 얼마나 강렬할까. 온통 한국을 비방하는 뉴스에 둘러싸여 살아야 하는 일본 속 한국인들의 애환을 우리가 알기나 할까. 그러니깐 이건 정치적인 문제를 넘어 함께 살아가는 우리 가족, 우리 이웃의 문제라고 마쯔다 노부부를 보며 잠시 생각해 보았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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