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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Sep 28. 2016

농부의 마음

비탈을 개간하며 알게되는


텃밭을 일구는 농부의 마음으로

    
백세 시대를 맞아 인생 이모작으로 귀농하는 이들이 많다. 은퇴를 한 친지들은 서울의 외곽으로 이사를 하고 농사를 짓고 있다. 안양에 터를 잡아 트랙터를 사고 농협에서 영농자금까지 받는 교회 선배가 있다. 그의 적극성에 영향을 받아서 안성으로 이주한 다른 선배는 대화의 주제가 '파종, 비료, 김매기'가 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환자와 병원을 화두로 했던 의사선생님의 큰 변신이다. 안양선배는 올 김장은 자급자족뿐 아니라 나눌 수 있다며 "배추 보내줄게" 카톡을 보냈다.

블로그 친구인 부산 가톨릭대학 철학교수님은 은퇴후 악양 동매마을에서 귀농생활을 즐기고 계신다.

은퇴 전부터 조금씩 준비하셨다. 소설가 친구는 서점문을 닫고 화성 근처 봉담에서 꽤 큰 농사를 짓는다.

페이스북으로 구경하는 텃밭의 풍성함이 놀랍다. 프로 농사꾼이 다 되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니 부러웠다.

남편에게 필랜쯤에 농장을 사자고 했더니 정색을 한다. 우리집도 나름 '도심 속 과수원'을 일구고 있다며, LA다운타운 인근에서 은퇴도 안한 채 귀농생활을 하는 셈이란다. 있는 거나 잘 건사하라고 퉁을 준다.

오래 전 언덕에 위치한 집을 살 땐 뒷마당 비탈에 아이비만 무성했다. 시나브로 개간하여 계단식 농사를 지은 지 오래이다. 여러 종류의 유실수를 심어 적은 양이지만 다양하게 수확 중이다.

봄엔 복숭아와 자두, 살구를 수확해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7월, 8월엔 불볕하늘을 받아 보랏빛 열매 속에 핑크 꽃이 만개한 무화과, 두달 동안 한 소쿠리씩 따서 주일마다 예배 후 교제시간에 나누어 먹었다. 우리집엔 너무 무른 것으로 담은 잼 한병 남았다.

8월, 9월 무화과가 끝물일 때부터 수확한 대추는 9월 중순까지 나누어 먹고 추석 즈음에 모두 따서 아는 이들에게 배달했다. 지난 주 구역식구들에게 한 봉지씩 가을 선물로 주고 대추걷이는 끝났다. 삼계탕에 넣거나 대추차로 쓸 쭈글한 낙과가 우리 몫이다.

틈새 작물로 향기로운 과바가 한창이고, 석류도 보석처럼 익었다. 단감은 10월이 되어야 맛이 들 것 같다. 사람의 안부보단 감의 안부를 묻는 이들의 전화가 잦다.

나누어 먹는 재미는 농사꾼만이 알 것이다. 과일이 달다는 칭찬 한 마디에 땡볕에서 애쓴 보람을 느낀다. 작은 텃밭에 심은 깻잎과 토마토, 가지, 피망도 밥상에 올라 식비 절감에 도움이 되었으리라. 올해 파파야를 첫 수확해서 샐러드에 잘 이용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벌써 농사 중이었다. 아픈 후 집에만 있는 내게 일거리와 볼거리를 주는 나무들. 거저 맺히는 열매는 없다는 걸 알려준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묵묵히 견디어야 달고 맛있는 과실이 된다는 것은 자연이 가르쳐주는 진리이다. 가을 볕에 열매가 무르익어 간다. 볕도 바람도 비도 감사한 마음, 농부의 마음.



이정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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