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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Sep 23. 2016

좋은 것만 배워도 아까운 세월

북새통 속에도 가을은 왔다


Bishop, California
 
우리 회사의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넬슨(Nelson)의 아들 케빈과 중장비 기사 호아퀸(Joaquin)의 아들 브라이언은 가끔 회사에 놀러온다. 사내아이들은 건설장비나 덤프트럭 이런데 관심이 많은지, 아빠를 따라 와선 장비에 타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경비견인 진돌, 진이와 놀기도 한다. 낯익은 꼬마들인지라 직원용 음료수도 주고 쿠키도 주곤 한다.
 
두 아이의 태도는 판이해서 케빈은 주는 대로 덥석 받으면서 한편으론 눈치를 살핀다. 더 얻어 갈 것이 없는가 보는 것이다. 그래서 캔디 하나라도 눈에 띄면 더 챙긴다. 번번이 "May I have one?" 하고 간청을 하면 안 줄 수가 없는 것이다. 반면 브라이언은 무얼 주면 부끄러워 간신히 손 내밀고 받은 후엔 "땡큐"하며 볼에 키스를 한다. 그러니 이 꼬마에겐 없는 걸 뒤져서라도 주고 싶다.
 
남편에게 말하니 하하 웃으면서 그 아빠들과 꼭 같다는 것이다. 넬슨은 머리가 좋은 대신 절대 손해를 안보고 남보다 무어라도 하나 더 가지려고 하고, 호아퀸은 착하고 우직하고 제 몫도 남들에게 양보를 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본대로 닮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작은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손님 접대용으로 씨스 캔디(See's Candy)를 내 놓았는데 젊은 엄마를 따라 온 꼬마아이가 아예 제 앞에 통째 갖다 놓고 일을 벌리는 거였다. 종류가 제각각 다른 것을 한 번씩 깨물어보면서 제 입맛에 맞는 걸 찾고 있었다. 열 개 이상에 이빨자국을 내고 있는데 그걸 보던 아이엄마가 말을 한다. "어머 어머 쟤좀 보세요. 보통 스마트한 게 아니네요." 맙소사 6살 난 자기 아들이 똑똑하다고 자랑을 하는 게 아닌가?
 
우리 어릴 때 같으면 볼기 열대 감이요, 지금은 어른인 우리아들 녀석이 어릴 때에도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났던 일인데 말이다. 그러니 부모가 되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주변의 다른 이에게도 피해를 주는 사람을 만드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살다보면 상식이 안 통하는 절벽 같은 이를 만난다. 세상의 이치를 알고도 남을 나이이건만 자기주장만 있고 남의 말은 무조건 틀리다고 하는 이들 말이다. 다름을 인정 않는 흑백 논리자 들이다. 이곳 신문사의 어느 기자가 큰 싸움이 난 노인 단체를 취재 차 찾아갔는데, 나이가 들면 몸도 굳지만 마음도 굳는 것 같더라고 해서 수긍이 갔다. 노인 단체의 문제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이견이 절대로 좁혀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노인 단체는 아니나 남들이 고상하기를 기대하는 문인단체나 한인회, 거룩해야 할 신앙의 공동체도 굳은 마음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번에 이곳 엘에이 큰 교회의 난장을 보니 그러했다.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분쟁이 났을 때 이미 경험한 터이지만, 잘못을 모두 남에게만 돌리고 "네 탓이요 네 탓이요" 하는 사람들. 남을 지적하는 손가락은 하나이지만 나머지 네 손가락은 자신을 향해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식이 그 부모로부터 언행을 배우듯 사회단체에서는 선험자 들이나 선배를 통해 그들의 사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남에게 보여 지는 나를 포장하기 위해, 후배나 후학에게 부디 반칙이나 합리화를 가르치려들지 말길 바란다.
 
내 잘못은 절대 없다고 공포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자락도 한번 추슬러 보았으면 좋겠다. 화해나 사과를 알리면서 글에 날이 서고 분노가 담겨있다면 그것이 과연 진정을 담은 글이라 할 수 있을까? 그 글을 읽는 이가 무언지 모르게 불편하고 감동이 없다면 그건 순리가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하늘이 주는 마음은 늘 평화로운 마음이었다.
 
좋은 것만 배우고 살기에도 아까운 세월이다. 신기하게 북새통 속에서도 가을은 왔다.
 

수필가 이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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