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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Apr 16. 2020

이런 비극

한국은 상중이다



 
착륙한 비행기의 창문에 비가 사선으로 부딪치며 눈물 흘린다. 바람도 덩달아 우는 인천 공항의 새벽. 휠체어를 끌어주는 공항직원도 입국심사대의 공무원도 꼭 해야 할 말만 하고 침묵이다. 환영 피켓을 든 여행사의 영접 청년들은 표정이 슬프다. 웃는 이가 없다. 한국은 상중이다. 전 국민의 애도 기간이다.
 
병원 검진 차 한국에 나왔는데, 놀러 나온 것이었으면 너무 부끄러울 뻔했다. 하필이면 빨간 여행가방을 가져왔을까 민망했다. 대부분의 국민이 검정 흰색 회색의 무채색 옷을 입고 예를 표한다. 유일하게 허락된 노란색. 가로수에 깃발로 옷깃에 리본으로 달려있다.
 
모든 즐거운 행사는 보류되고 연기되고 취소되었다. 하루 종일 TV에 눈을 고정하고 실종자와 사망자의 숫자 변화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런 비극이 어디에 있을까? 온 나라가 세월호의 주술에 붙들렸다. 부패와 악의 트라우마. 능력 없는 어른들의 탄식들. 곳곳에 "미안합니다" 현수막이 걸려있다.
 
검사 날짜에 맞추어 병원을 방문하니 아산병원 여러 곳이 노란 국화로 장식이 되어있다. 마치 장례식 장안으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의사 면담 후 결과, 내 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신장의 수치가 두 배로 올라 재입원을 하여 원인 규명을 해야 한다고 한다. 매우 걱정이 되는 일이었지만 바닷속의 희생자들 앞에선 낙담할 일도 아니었다.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 비극에 비하면 이건 일도 아니다 마음을 다잡았다. 남의 불행이 때로는 내게 위안이 되는 아이러니한 삶의 현실이다.
 
의사의 다음 오더를 기다리며 복도에서 근심하고 있는데, 옆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환자가 말을 건다. 우리의 대화를 들었나 보다. 자신은 17년 전 이식을 했는데 수치가 비정상일 때가 있다며 너무 염려 말라고 위로한다. 선험자의 따스한 격려에 용기를 얻었다.
 
병치레를 하는 동안 고통 때문이었는지 쓰는 치료약 때문인지 내 머리는 백발이 되었다. 염색을 하려니 면역 억제제를 쓰는 내게 독이 될지 모른다며 의사 선생님은 염색을 금하신다. 주위에서는 백발이 요즘 유행이라며 보기 좋다고도 했다. 자신에겐 늘 후한 법이니 나름 멋있는 은발이라 착각했다.
 
백발로 휠체어에 앉아있는 나와 옆에서 밀고 있는 남편을 보더니, 아까 나를 격려하던 그분이 안 해도 될 말을 하시는 거다. "착한 아드님을 두셨네요." 옆에 있던 올케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고, 남편은 뜻밖의 비상사태에 내 눈치를 살피며 "와이프입니다" 한다.
 
헐! 부부지간을 모자지간으로 보다니. 큰 실례 했다며 사과하며 자리를 뜨는 그분께 괜찮다고 웃었지만 맘은 이미 상했다.
 
백발이어도 이승에 있음이 고마운 일이라고, 나 자신을 달래고 어루만지는 한국의 5월 어느 날이다.


중앙일보/ 이 아침에/ 5월 12일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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