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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May 06. 2020

편견의 날들 속에서

Don’t  shoot


[편견의 날들 속에서]
수필가/이정아

미주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5/05/05 21:33  

수영을 하러 간 스포츠센터에서 키가 아주 큰 청년을 보았다. 농구공을 든 흑인 청년이었는데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공으로 갖가지 묘기를 보이니 주위 사람들의 환호가 대단하다. 공을 드리블하며 슛을 하는 포즈로 뛰어오르는데 청년의 등이 보였다. 그의 등엔 "Don't Shoot" 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두 손을 치켜든 항복의 실루엣이 그려진 아래의 그 글씨가 섬뜩했다.

흑과 백의 콘트라스트가 강렬하기도 했거니와 그 의미 때문이기도 하다. 나를 쏘지 말라는 직역의 뜻보단, 경찰이 무고한 흑인에게 종종 이렇게 한다는 경고이자 동의를 구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지 않았을까?

관광지의 풍광이 찍힌 티셔츠는 관광도시인 이곳에서 종종 보았다. 티셔츠는 관광지의 엽서 역할도 하지만 이런 공공의 이슈가 되는 메시지 보드의 역할도 한다. "쏘지 마세요" 이런 무서운 문구를 전쟁터가 아닌 평화를 추구하는 나라에서 보게 되다니 마음 아프다.

멜팅팟인 이곳에 와서 산 지 30년이 넘었어도 나는 아직 한국말을 하며 한국음식을 먹는다. 다른 나라 말을 여러 가지 들어보긴 해도 사용은 못하고, 다른 나라의 음식은 다채롭게 먹긴 하나 그 음식을 먹는 나라 사람들을 이해하진 못한다. 아니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내 코가 석자라며 나만을 위해 분주히 살았기에.

아프리칸 아메리칸, 라틴아메리칸, 코리안 아메리칸들이 섞여 살아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 오해는 편견을 낳으며 적을 만들게 된다. 대개 흑인은 난폭하다거나, 라티노는 손버릇이 나쁘다거나 등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 말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타민족이 한국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잘 모르는 듯하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하는 중고서적 세일에 봉사자로 참여했었다. 내 옆엔 도서관에서 나온 타인종 여성 슈퍼바이저가 앉아서 북세일 광경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계산대를 유심히 보던 그녀가 줄 서 있는 두 명의 한국인을 보더니 "좀 이상하지?" 하며 동의를 구한다. 두 사람은 진열용 도서관 박스를 손에 들고 있었다. 거기에다 흰 니트를 덮었으니 더 의문스럽다나? 

결국은 무거운 몸을 일으키더니 그쪽을 향한다. 가서 보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고른 책이 많아 도서관 박스를 잠시 썼고 계산 후에 리턴한다고 했다며 '노프러블럼'이란다. 흰색 니트는 본인이 들고 온 숄인데 추울 때 둘렀다가 거추장스러워 박스 위에 올린 거라며 그 또한 '노프러블럼' 이라며 쑥스럽게 웃는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한국인을 정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입력해 두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누명이 벗겨져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나 잠시 후 다른 자원봉사자가 가져온 박스를 보고 기함했다. DVD와 CD의 빈 통이 가득한 거다. 우린 분명 알맹이가 담긴 것을 기증받았고 그걸 1불씩에 판다고 가격표까지 붙였는데, 1불이 아까워 슬쩍 가져간 양심불량자가 이렇게나 많다는 증거가 아닌가? 손님의 90%가 한국인이어서 남 탓을 할 일도 못되었다. 아까 그 슈퍼바이저가 자리에 없길 망정이지 부끄러웠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 이때 정직할 수 있어야 선진 국민이 될 자격이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 같아도 하늘은 보고 있다. 서로를 용납하고 배려하는 세상에 살려면 우선 정직해야 한다. 편견과 오해가 만드는 또 다른 전쟁인 폭동을 피하려면, 어찌 살아야 할까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미주중앙일보[이 아침에] 5월 6일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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