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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May 07. 2020

어머니날에 생각하는

씩씩한 내 어머니



                                                                                                                                                               
 
어머니는 머리가 좋았다. ‘연희동 암산왕’이라고 불리며 여러 개의 ‘계’를 운영하셨다. ‘계주’ 노릇을 하며 1번은 얼마 2번은 얼마의 불입금을 내야 하는 걸 달달 외우고 있었다. 계산기가 없던 시절 어머니가 컴퓨터처럼 장부를 통째로 외우면 모두들 놀라곤 하였다. 시인이며 신문기자인 아버지는 그저 술만 좋아하고 경제력은 별로였던데 반해 어머니는 활달하며 통이 컸다. 우리 집에는 어머니의 동창과 계원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그중엔 이웃해서 살다가 후에 영부인이 되신 분도 계셨다. 어머니는 자랑처럼 말씀하시곤 한다. “이 XX여사가 내 계원이었다.” 어머니의 생활력 덕에 가난한 시인을 아버지로 둔 우리 네 남매가 대학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머니는 신문사 주택의 너른 마당에 닭도 치시고 하숙도 치셨다.  30 여수의 닭은 아버지의 시인 친구들이 오시면 안주용으로 잡았고, 연세 대학에 다니는 두 대학생이 우리 집에 하숙을 했었다. 창문 앞에 진달래가 있던 우리 집을 그리워하며 하숙생이 쓴 글이 연세춘추에 실렸었다고 지금도 이야기하신다.

오래전 성악을 공부하시고 합창단의 멤버였던 어머니는,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 선생과 ‘비목’을 작곡한 고인이 되신 장일남 선생과 친구이시다. 젊은 시절 같은 합창단원으로 친한 사이였다고 들었다. 합창단 안에서 서로 연애하고 결혼을 하였다고 한다. 그 연애담을 엊그제 일처럼 낱낱이 기억하시며 실감 나게 이야기하실 땐, 나도 덩달아  마음이 울렁거리곤 했다.  지금도 유명한 클래식이나 성악곡은 다  알아들으시고 원어로도 부르신다. 노인합창단에서 솔로이스트로 활약을 하신다. 엄마는 목청도 크고 목소리도 고왔다. 내 연애 상대는 젊은 목소리에 속아, 전화로 우리 어머니께 사랑고백을 한 사람도 있다. 어머니는 모른 체하며 그 고백을 끝까지 다 들으실 정도로 재미있는 분이기도 하다.

 말 수가 적은 아버지가 집에서 글을 쓸 땐 더 예민하고 신경질 적이 된다. 아버지는 늘 어렵기만 했다. 어머니는 하하호호 잘도 웃으시고 잘못하면 매질도 호되게 했지만 우리와 친했다. 아버지 몰래 역성도 들어주고 아버지께 감출 것은 감춰주기도 하였다. 대신 다른 집 엄마들처럼 자식을 위한 희생 이런 것은 없었다. 간식도 아이들 넷에 엄마 몫까지 늘 5등분을 했다. 딴 엄마들에 비해 엄마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게 아니냐며 사춘기 때 동생들과 성토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 사시는 지금도 매우 씩씩하시고 독립적이시다. 자식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너무 안간힘을 쓰셔서 속이 상한다. 많지 않은 재산을 가지고 계시면서 때마다 작은 인심을 쓰시는 어머니는 그 재미로 사신 다고 한다. 얼마 전 대장암 수술을 받으시고 많이 기운이 떨어지셨다.   
 
지난 추석에 아픈 노모를 뵈러 가려고 비행기를 예약하였다. 어머니가 전화하셔서 극구 말리신다. 신종 플루가 가장 극성일 때라며 제발 오지 말라 신다. 암에 걸린 어머니는 자식의 몸살을 걱정하신다. 돌아보니 나는 어머니 닮은 엄마도 못되고 자식다운 자식도 못 되었다.
 
씩씩한 어머니도 고민이 있으면 하나님께 매달리셨다. 잠결에 들리는 엄마의 기도소리에 깨면, 자는 척하며 기도를 엿듣기도 하였다. 자식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기도를 하셨던 어머니는 지금도 멀리사는 우리 가족을 위해 새벽 기도를 빼놓지 않으신다. 이제껏 산 것이 어머니의 기도 덕이라고 생각한다. 멀리 살며 근심 끼치는 것으로 나는 이미 불효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정아/수필가


한국수필가협회 공동 문집 ‘엄마바보' / 2010년 선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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