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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Jun 09. 2020

고희를 맞으시는

선생님께


나태주 선생님,
 
한국은 폭설에 강추위라던데 이곳은 봄이 벌써 온 듯 따스합니다. 마당엔 벌써 체리꽃이 피었고요.
얼마 전 봄비도 내렸습니다. 이곳 캘리포니아는 가뭄이어서 식당에선 손님이 청하지 않으면 물을 서비스하지 않고 있습니다. 봄비로 해갈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가뭄의 단비 같은 손님이셨습니다.
10여 년 전 문학강연차 미국을 방문하신 선생님을 처음 뵙고,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시는 걸 귀담아들으면서 그리고 선생님의 삶의 모습을 곁눈질하면서 내 마음대로 선생님을 멘토로 삼아 글을 썼습니다.

정식으로 문학공부를 하지 않고 이국에서 모국어로 글을 쓰는 제겐, 바로 그때 선생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선생님처럼 매일 글쓰기를 연습하고 정직하고 꾸밈없는 선생님을 닮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저보다 앞서 죽음 가까이에 다녀오셨기에, 그것을 이겨내시고 다시 건강을 찾으셨기에 요즘의 저의 삶은 선생님을 삶을 따라 살고 있는 듯합니다.

몇 년 전 2007년도 이던가요? 이곳을 다녀가시고나서 얼마 후에 급환으로 입원하셨단 소식을 접하였지요. 너무 급해서 학교에선 학교장으로 장례준비를 하고 있다 하고 미국에서 우리가 모으는 성금은 병원비에 보탤지 조의금이 될지 모른다고들 했답니다. 글쓰기나 삶의 방식을 조언해주시던 선생님이 그렇게 되시니 참으로 슬펐습니다.
 
기적같이 다시 살아나시고 이번에 제가 큰 병을 앓게 되자 친정 오라버니처럼, 때론 친정아버지처럼 위로해주시고 수시로 방문해서 기도해주신 덕에 저도 선생님처럼 다시 살아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선생님, 다시 살아난 저는 선생님 말씀처럼 남들은 경험하지 못한 병상의 고독과 고통을 체험한 글감이 풍부한 문인이 되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글을 쓰라 하신 말씀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환자로 죽기보다 문인으로 죽고 싶었다는 얼마 전 소천하신 최인호 선생이 기억나는 밤입니다. 선생님, 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병으로 세상을 뜨는데 아직 살아서 글도 쓸 수 있는 선생님과 저는 무척 행복한 사람입니다.
 
올해 7 순을 맞으시는 선생님. 오래오래 사셔서 독자들에게 '풀꽃' 같은 희망을 전해주시고 제게도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주십시오. 그리고 좋으신 사모님과 해로하시기를 멀리 바다 건너에서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정아 올림
<나태주 선생님 7 순 기념 문집에 부쳐 2월 9일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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