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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Jun 21. 2020

돌아온다

부메랑같이


돌아온다. 부메랑 같이
                                                       
수필가 이정아


 오래전 한인 축제의 날이었다. 축제기간 중 교민 백일장이 있었다. 혼자서 습작해온 나의 글쓰기 수준을 알고 싶었다. 1991년 그 해엔 글 잘 쓰는 이들이 참가하지 않았는지 다행히 장원을 하였다. 장원에게 주는 혜택으로 행사를 주관한 문인단체의 회원이 되었다. 정식 등단도 안 한 사람을 문인단체에 끼워주는 것이 그저 황감하였다.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참석을 하였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간식을 준비하였다. 모임 때마다 화채용
보울과 미리 썰어둔 과일, 주스, 얼음팩과 컵을 담은 보따리를 챙겨 다녔다. 마시는 이들은 그냥 마실뿐 누가 준비했는지 관심도 없었다.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고 즐거웠다.


오랜 시간이 지나자 대추차를 끓여오는 이도 생기고 샐러드를 가져오는 이도 있었다. 모임에 제법 재미를 붙일 즈음 어떤 사정으로 그 협회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 뒤로는 문인 모임에는 흥미를 잃었다. 회원명부에 이름만 유지할 정도의 출석만 했다. 그 게으름이 벌이 되어 올해 재미수필문학가협회의 회장이 되었다. 소홀히 참석한 대가를 혹독히 치르는 중이다. 정기 모임에 빠질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우리 협회의 일이 아니어도 참석해야 하는 행사가 줄줄이 있으니 말이다. 회장이 되고 나니 모임에 나와주는 회원들이 큰 힘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묵묵히 참석해 주는 분들께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일일이 연락을 안 해도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공부하는 열기가 뜨겁다. 교실에 자리가 부족할 지경이다. 거기에다 예고 없이 먹거리를 들고 오시는 분들이 있다. 타운의 떡집 주인 헬렌 여사는 매월 월례회 때마다 떡을 제공해주신다. 빵이나 과일, 음료수를 준비해 오시는 회원들도 계셔서 감격한다. 조금 거창한 생각인가? 나는 그 음식들이 문학에 대한 경의라고 믿는다. 공치사처럼 들릴까 염려되지만, 예전의 간식 보따리를 들고 다니던 그때를 떠올리며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증명되는 것에 놀란다.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돌아오게 되어있다. 티끌만 한 것이어도 좋은 마음으로 행한 것은 반드시 몇 배로 돌아온다는 걸, 살면서 많이 경험한다.

 예전엔 무얼 선물 받거나 밥을 얻어먹으면 곧바로 되 갚곤 했다. 그게 경우 바른 사람의 태도인 줄 알았다. 너무 빠른 되갚음을 보고 친구는 정이 떨어진다고 했다. 대가를 바라고 준 선물이 아닌데 즉시 갚으니 정성을 돈으로 판 기분이 든다나? 그 말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내 생각의 ‘경우 바름’이 남의 눈엔 ‘재수 없음’으로 비친다는 말이 아닌가. 시야가 좁고 
호흡이 짧은 탓이었다. 그 뒤론 깊이 반성을 하고 여유를 두고 갚게 되었다.   

 퇴근해서 돌아오니 현관 앞에 큰 통의 식혜가 담겨있고 맛난 김치가 놓여있다. 성인병에  좋다고 각종 과일과 견과류를 고아서 보약처럼 한 들통 챙겨주신 선생님도 계시다. 구닥다리 선글라스를 벗어버리라며 팬시한 썬 글라스도 선물 받았다. 여행을 다녀온 이들로부터는 스타킹에 책에 가방도 선물 받았다. 모두 최근에 받은 선물 들이다. 부메랑처럼 돌아온 선물은 사랑의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갈 것이다.

 즉시 갚으려 안간힘 쓰다 보니 많이 경박했다. 꼭 그 사람에게 갚을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사랑을 다른 이에게 에둘러 주거나 묵혔다 갚는 방법이 고상하고 훨씬 행복하다는 걸 알기까지 오래 걸렸다.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이 다행이다.


2009 초고

07022020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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