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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Jun 23. 2020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된

북유럽여행


[이 아침에] 일상의 고마움에 눈 뜬 여행

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06.23.16 00:31
    
크루즈에도 거리 관광에도 어딜 가나 중국인 여행객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호떡집을 여럿 불태운다.

그들의 소란함과 무질서로 인해 얼굴색이 비슷한 우리가 덩달아 눈총을 받는 일이 있었다. 우리 일행은 민망한 나머지 종종 "We are not Chinese, we're Korean" 이라며 면피용 멘트를 해야 했다. 그러면 뿌루퉁하던 종업원들이 활짝 웃으며 친절 모드로 "안녕하세요?" 하고 한국말 인사까지 한다.

핀란드의 음악가 시벨리우스 기념공원에는 공중 화장실이 단 두 개뿐이었다. 앞에 길게 선 중국인 남자들이 급기야 5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문도 제대로 닫지 않고 볼일을 본다. 줄 서있던 모든 이가 "오 마이 갓" 비명을 질렀지만 본인들은 태연하다. 달라도 너무 다른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그린시티라는 푸른 베를린의 많은 볼거리, 코펜하겐의 동화나라 같은 아기자기함과 스톡홀름의 중후한 품위, 헬싱키의 세련된 깔끔함, 질서 없는 웅장함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보았다. 무얼 봤는지 인파의 뒤통수만 보다 온 듯하다.

그럼에도 어딜 가나 보이는 한국산 자동차와 스마트폰, 한국 회사의 커다란 광고판은 뿌듯한 기억으로 남는다. 관광객으로 넘치는 여러 도시 중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의 고즈넉하고 검박한 분위기와 친절한 시민들을 만난 것은 이번 여행의 수확이었다.

발트해 동쪽의 세 나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발트 3국이라 부른다. 지금은 독립국이지만 구 소련이 통치하던 곳이다. 이번에 가본 에스토니아는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오래된 성곽과 건물에서 실제로 살며 장사도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600년 된 약국이 10대째 지금도 영업 중이다. 중세 시대의 약초와 약 처방 등이 진열되어 박물관 같은 그곳엔 말린 개똥과 두꺼비, 고슴도치도 약재로 전시되어 있다고 해서 흥미로웠다.

실연의 아픔을 치유하는 약은 관광객들에게 인기라는데, 마침 문을 닫는 일요일이어서 사지 못했다. 젊은 날 내게 꼭 필요했던 약이고 사랑에 빠진 누구에게나 유용할 약이어서, 많이 사서 주변에 선물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골목 모퉁이마다 아몬드를 볶아 파는 포장마차가 정겨운 곳. 시 전체와 사는 모습까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 고풍스러운 나라가 북유럽의 IT 최대 강국이라니 더 놀라웠다. 혁신과 역사의 공존. 다시 가서 천천히 둘러보고 싶은 매력적인 곳이다.

여행에 들고 간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였다. 나는 수필을 쓰지만 하루키의 치열한 작가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공연히 하루키를 폄하하던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독서로 혜안을 얻고 여행에서 개안한다'는 말처럼 이번 여행으로 내 눈이 조금은 트였길 바란다.

공기와 햇볕의 고마움을 모르듯 고여있는 일상에선 감사를 몰랐다. 보름 만에 돌아오니 미국이 천국이고 캘리포니아의 햇볕은 명품이다. 오래된 내 집 침대도 호화 호텔보다 안온하다. 불평 없는 날들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06242020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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