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아 Jun 29. 2020

삭발하는 사람의

그 마음처럼



                                                                         
                                                                                                          
 사무실 직원 John이 딸을 낳았다. 아니, 낳기는 그의 아내가  낳았는데 John이 출산을 한 것으로 잠시 착각했을 정도이다. 아내와 함께 병원을 다니느라 임신기간 내내 매주 수요일 결근을 하였다. 그의 아내는 임신 초기부터 이상이 있어서 자주 병원에 다녔다. 조산으로 4파운드의 미숙아를 낳아서 인큐베이터에서 지낸다고 한다.

 우선 아이 낳은 것을 축하해 주어야 하고, 더구나 미숙아여서 염려를 해 주어야 윗사람의 도리 이건만. 나는 John이 앞으로 정상적인 사무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더 좋았다. 비서 역할을 하는 John이 안 나오는 날 사무실일이 많이 불편하였기에 말이다.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핑크 일색의 신생아용 바스켓을 선물한 지 3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그 배내옷들이 이제야 맞는다고 소식을 전한다. 드디어 정상 아기의 체중인 10파운드가 되어서 한시름 놓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찡해 오면서 그간
부모로서 마음고생이 심했겠다 비로소 생각이 드는 거였다. 내 자식이나  손녀라면 이렇게까지 무심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필이면 그때에 나도 안면마비가 와서 내 앞가림에 정신없었다고 하면 변명일까?

 환하게 웃으며 아이의 소식을 말하는 데 John의 헤어스타일이 낯설다. 까까머리 삭발이다. 왜 그랬냐? 물으니 아이 키우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그렇게 하였단다. ‘삭발투혼’ 이라며 머리 깎고 의지를 불태우는 박찬호나 이봉주 같은'운동 삭발’ 선수 들은 보았어도, ‘출산 삭발’은 처음 보는 일이다. 돈을 아끼려고 바리캉을 사서 자삭을 한다나? 미용실 비용을 모아 기저귀를 사야 한다고 해서 대견하기도 하고 약간 마음이 아렸다. 그게 자식을 둔 아비의 마음일 것이다. 아이 낳더니 철이 부쩍 든 것이다.

 코스코에 가니 산처럼 쌓아 놓은 아기 기저귀가 마침 눈에 띄었다. 200개가 넘게 든 박스를 샀다. 철이 든 John에게 상을 주고 싶었다. ‘삭발 포상’이라며 기저귀 박스를 주니 좋아 죽는다. 적은 돈 쓰고 큰 인심 쓴 듯 기분이 흐뭇했다.

 우리 아이는 나를 닮아 머리카락이 가늘다. 어릴 적에 머리를 서너 차례 밀어주었다. 숱 많은 건강한 머리털을 위해 민머리 희생이 따라주어야 한다고 들었다. 제 아빠가 다니던 텍사스 주립대학의 심벌 색인 아도비 오렌지(adobe orange) 색 셔츠를 입히니,
라마의 동자승같이 보였다. 장난 삼아 목탁을 손에 쥐어주고 찍은 어릴 적 사진이 있다.


그 추억 때문인지 대학 가서 서슴없이 삭발을 하였다. 공부 때문에 바빠서 시작한 ‘공부 삭발’ 과인 아들이 손을 내민다. 오랜 삭발 경력의 저에게도‘삭발 포상’을 달라나? 그 철없음에 웃고 말았다.

 운동선수는 기록 향상을 위해 삭발을 하고, 대학의 새내기는 공부에 올인하느라 삭발을 하고, 젊은 아빠도 새로운 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삭발을 한다. 이유 있는 긍정적인 삭발인 것이다. 삭발이라면 용트림 문신을 한 조폭을 떠 올리곤 무조건 싫어했는데 아날로그 세대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어려울 때 일 수록 삭발할 때의 그 마음가짐을 떠 올리며 살아 볼 일이다. 신의 선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John의 딸 수하냐(Suhanyah)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주님의 가호를 바라며.


수필로 그린 삶/미주 한국일보/수필가 이정아


6월 29일 2020 일부 수정


아들아이의 삭발



작가의 이전글 금의 환향 이어야 했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