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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Jul 15. 2020

사는 게 무엇인지

미움에 둔감하기



2017년 7월 5일 자 미주 중앙일보에 기고한 ‘문학, 함께가는 도반들께’라는 한 편의 글로 난감한 상황에 놓인 일이 있다. 내 글에 K 사이버대를 폄하한 내용이 있다며, 그 사이버 대학 미주동문회 이름으로 나를 성토한 광고가 이곳 양대 일간지에 실렸었다. 황당했다. (슬프게도 주동자는 그 사이버대 출신 같은 업종? 문인이다)

그 학교를 특정하지도 않았고 사이버대를 흉보지도 않았건만, 문예창작을 공부한다면서 1500자 정도의 단문에 대한 독해력도 없다니 속상한 한편 측은지심이 들었다. 나를 비난하는 신문광고 글은 얼마나 유치한지 이곳 문인의 수준이 다 드러나 부끄러웠다. 개인적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신문광고로 망신 주려던 의도가 보였다.

마침 한국에서 하계 문학 세미나 강사로 오셨던 나태주 시인과 유성호 평론가, 장경렬 교수님이 내게로 퍼부은 온갖 악플의 카톡과 신문광고까지 다 보시더니 조용히 말씀하신다. 절대 상대하지 말라며, 필화는 가만두면 제 풀에 사그라드는 법 이란다. 한국도 허다한 일이긴 한데 못된 것만 배웠다며 이곳 문단에 혀를 차셨다. 광고비로 돈 쓰고 누워 침 뱉기 한 셈이 아닌가? 나도 망신살이 뻗쳤지만 서로에게 이롭지 않은 행위였다.

이러저러한 일을 겪으며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모르는 사이 밉게 보인 적이 많았나 보다. 문제의 그 사이버대학의 단톡 방엔 나에 대한 루머와 욕설이 가득했다. 몇몇의 열등감의 화신끼리 나쁜 영향력을 발휘하여 단체의 광증으로 확산되고 있어서 안타까웠다. 나는 그들에게 어느덧 ‘년’으로 지칭되었다.

바하마 여행 중에 읽은 책 아들러의 심리학에 보면 보통 10명 중 두 명 과는 마음이 통하며, 하나는 미워하고 물론 나도 상대를 미워하며, 7명은 내가 무얼 하든 아예 관심조차 없단다. 나를 좋아하는 이들과의 행복한 시간 나누기도 모자란데 쓸데없는데 세월을 버릴 필요가 있을까? 모든 이에게 사랑받으려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 '미움받을 용기'가 특히 내게 필요했다. 미우면 미운대로 내버려 두니 세월이 약인 모양인지,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사람답게 살기도 어려운데 그에 더해 문인답게 살아야 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지 싶다.

<대개 질투나 험담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당하는 쪽보다 상황이 나쁜 경우가 많다. 시샘받는 쪽은 누가 봐도 행복한 사람이고 시샘하는 쪽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마음이 뒤틀린 사람인 경우가 많다.

질투하고 험담하는 사람을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질투해줘서 고맙다고 절을 해도 좋겠다.

-와타나베 준이치,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

최근에 읽은 지혜서이다. 둔감한 내가 자랑스러울 때도 있네. 그들 덕에 4번째 수필집을 낼 수 있었다. 지나고 보니 감사하다.


수필가 이정아

07142020 일부 수정

#경희사이버대 #한심지사#독해력부족#문인답기#사람답기


악플을 차단했더니 돈 들여 이런 광고까지 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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