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아 Jul 10. 2020

Birth와 Death사이의

선택(Choice)


삶, 무얼 믿을까?


오래전 엘에이로 이사 올 때, 아파트를 얻으러 가는 남편에게 신신당부했다. 엘에이 한인타운에는 도서관이 있다니 도서관 가까운 곳의 아파트를 꼭 얻으라고. 한국 신문을 통해 그 당시 올림픽 거리에 한국인이 사서인 도서관이 있는데, 한국 책이 많다는 소문을 멀리 텍사스에서부터 들은 까닭이다.

올림픽과 엘덴에 있던 피오피코 도서관과 반 블록 떨어진 한인타운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매일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도서관에 가는 게 일이었다. 텍사스에 살면서 목말랐던 책의 갈증을 풀 수 있어 좋았다. 아파트 잘 구했다며 좋아한 시간은 잠시였다.

어느 날 아파트 정문에 간판이 붙었다. '영신 철학관'. 1층에 점집이 들어서고 게이트는 점집 손님들로 인해 늘 열려있어 입주민들은 불만이 많아졌다. 점집 간판이 달린 출입구로 드나들자니 남의 시선도 부끄럽고 편치 않았다. 점집은 날로 문전성시. 앞날이 불안한 한국인들이 당시엔 더 많았던 듯하다.

소문에 점집 선녀님이 E 여대 출신이라는 둥, 영험하다는 둥 말이 무성했다. 점치는 선배라니 궁금했다. 열려있는 문 안을 잠시 훔쳐보니 신당에 마치 삼국지의 관우 같은 장군의 초상을 붙여놓아 식겁했다. 일면식도 없는 장군이 선녀님을 통해 미주동포의  운을 점친다?

나도 젊은 한 때 신문의 '오늘의 운세'를 먼저 보고 나서야 뉴스를 읽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그러나 운세는 늘 애매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두루뭉술했다. 결국 점이라는 건 내가 점쟁이에게 푸념한 진실에 추측이 약간 가미된 환상일 뿐이다. " 다 잘 될 거예요. 장군님이 말씀하시네요" 이 말 한마디에 복채 내고 위안받는 것이다. 결국.

어떤 용한 점쟁이도, 아무리 비싼 복채로도, 돈 안 드는 ' 오늘의 운세' 로도 인생이나 삶이 바뀌진 않는다. 소설을 쓰던 옛 친구는 근심이 생기면 늘 점집에 가곤 했다.  20년쯤 전의 복채는 $40로 적지 않은 액수였다. 근심이 많던 그녀는 자주 윌셔가의 처녀보살집에 드나들었다.


정신과 의사인 친구는 해마다 여름에 한국으로 휴가를 나갔다. 후에 들어보니 대학로의 점집에 연례행사로 나갔다 와야 마음이 편하다나? 그 지성과 무속의 괴리감에 적잖이 놀랐다.


같은 아파트 살던 선배, 그 선녀님은 리커 마켓을 한다는 (기둥) 서방님의 잦은 구타로 아파트 세탁장에 피신하길 수차례. 세탁장에서 만나 멍든 얼굴에 어색한 웃음 지어 보이더니 다른 곳으로 이사 나갔다. 남의 삶에 적극 개입해 미래를 점쳐주던 그녀도 자신의 앞날은 예측 못했나 보다.

아는 분의 카카오 스토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사주, 팔자, 운세에 링크를 걸어 매일매일 보고 계셨다. 무언가 불안하신가 보다. 삶이란 게 원래 애매모호한 것이거늘. 무슨 근심을 갖고 계신지 알 수는 없지만 위해서 기도 해야겠다.


수필가 이정아


작가의 이전글 그늘 밑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